심층취재

127년 홍콩 경마, 영국 연방때부터 시작 즐기는 문화로 자리

영천시민신문기자 2011. 10. 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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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년 전통 홍콩 경마, 영국 연방때부터 시작 즐기는 문화로 자리

 

경마공원 기획취재 가운데 경마 선진지 탐방을 통한 벤치마킹을 위해 홍콩경마장을 방문했다. 2박4일 일정으로 방문한 홍콩경마장은 한국마사회와 교류가 없어 취재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도 했다. 홍콩경마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 경마역사와 함께 경마장 운영실태, 경마가 지역민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2회에 걸쳐 보도한다.

 

전체인구 14% 경마 즐겨
홍콩은 현재 국제경주분류위원회(ICSC)로부터 PART2 국가로 분류될 만큼 일본과 함께 아시아 최고의 경마 선진국이다.
홍콩에는 홍콩섬의 해피밸리 경마장과 구룡반도의 샤틴 경마장이 있으며 대한민국의 장외발매소처럼 운영되는 옥외투자처가 130개에 달한다.
홍콩경마의 역사는 해피밸리 경마장과 함께 하고 있다. 홍콩경마는 올해로 127년을 맞았으며 2009년에는 125주년 기념행사로 홍콩 각지에서 경마와 관련된 전시회를 열었으며 기념 마권을 통해 경마와 함께한 홍콩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이벤트도 가졌다. 11월에는 125주년배 경마대회를 성대하게 개최하기도 했다. 이처럼 경마는 홍콩인들에게 있어서는 자신들이 살아온 역사이자 오늘날에도 여전히 향유하고 있는 문화생활이라 말할 수 있다.


홍콩에서 처음으로 경마시합이 벌어진 해는 1845년이다. 당시는 홍콩이 영국연방이 된지 5년째 되던 해이다. 홍콩역사에 의하면 1841년부터 1844년까지 홍콩경마는 마카오의 경기장을 빌려서 거행했다고 한다. 첫 경마시합은 영국의 홍콩점령을 경축하기 위해 열었고 이후 매년 음력설에 홍콩총독부와 상인연합회에서 말과 기수를 파견하여 시합에 참가시켰다.
마카오 경기장을 빌려 경마시합을 개최하는 방식은 1848년까지 지속되었고 1845년 홍콩섬의 동라만 쾌활곡(해피밸리)에서 첫 번째 경마시합을 열었다.


해피밸리는 원래 벌레가 많고 학질이 창궐하여 모두 이주해 버리고 주거 금지를 내려 묘지로 사용되던 곳이지만 개발을 위해 늪지를 매립하여 경마장을 건립했다.
영국인 위주로 진행되던 경마시합은 날이 갈수록 각국 사람들이 늘어나자 유럽과 미국 인사를 회원으로 참가시키고 1884년 2월 정식 새마회를 조직했다. 초대 회장은 홍콩 총독 조지 보윈 경이 맡았는데 이후 역대 총독은 모두 새마회 명예 회장을 겸임하게 된다.
새마회가 성립된 후 해피밸리 경마장은 몇 차례 수리를 하여 점차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처음에는 오락성으로 시작되었지만 1877년 호우로 인해 경마장 일부가 훼손되자 새마회에서는 은행에서 자금을 빌리게 된다. 하지만 한정된 회원비로는 은행 빚을 상환하기 어려워지자 복권을 만들었고 이때부터 도박성 활동이 시작된다.
당시 경마장에는 두 구역이 있었는데 하나는 회원구역으로 대부분 영국인 회원들이 관람하는 곳이고 하나는 일반 구역으로 중국인들은 입장권 1위안을 주고 들어갔다.
현재에도 홍콩경마장은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있는 구역과 회원전용 구역이 나누어져 있으며 입구도 다르다.

해피밸리 경마장 관중석


이렇게 경마문화가 차츰 중국인들에게 전파가 될 즈음에 커다란 사고가 발생한다. 1918년 2월 26일 경마시합이 한참 진행될 때 지나치게 많은 관중으로 인해 관람석이 무너져 내려 6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는 대형사고가 난다.
홍콩경마의 위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후 일본군이 홍콩을 점령하여 새마회의 외국인들은 출국당하거나 붙잡히게 되어 사실상 경마를 폐지하기도 했다.


홍콩의 경마시합은 오랫동안 아마추어 기수들이 출전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외국의 프로 기수가 홍콩을 방문해도 시합에 참가하는 자격을 주지 않았다. 1971년 3월 프로페셔널 방식을 도입하고 영국과 호주 등지에서 기수들이 홍콩으로 진출했다.
1971년 12월 20일에는 경마장 밖에서도 마권을 구입할 수 있게 11개 판매처를 개설하고, 1974년 2월 전화 마권구매를 개시하여 1991년 이용고객이 30만명을 초과하게 된다.
경마의 프로전향 후 매년 투자액은 증가하여 1984년에서 1985년에 66차례 거행된 기간에는 투자액이 196.85억 홍콩위안을 기록하기도 했다.


80년대 사실상 홍콩경마는 세계 선진수준에 다다랐다. 1988년에 홍콩컵 초청대회를 열어 싱가폴의 선수를 참가시키기 시작했고 대회는 점차 국제화되어 현재는 매년 1회 국제경마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현재는 매년 시합기간을 정해 개최하는데 보통 9월 초에 시작하여 다음해 6월 하순에 마친다. 기간 중 총 78차례의 경주가 열리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혹은 일요일에 주야로 나뉘어 진행한다. 주간 시합은 오후 1시 반에 시작하고 10번 씩 치른다. 야간 시합은 저녁 7시 반에 시작하고 7번 씩 치른다.

홍콩경마장은 홍콩쟈키클럽에서 운영하며 일주일에 이틀(해피밸리 주중 야간경기, 샤틴 주말 주간경기)간 경마가 열리지만 매출부분에서 세계 6위에 오를 만큼 경마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실제로 홍콩인구가 약700만명인데 경마를 즐기는 인구가 100만명이 넘고 있다.
홍콩인들의 경마사랑은 규모를 보고도 알 수 있다. 쟈기클럽에서 운영하는 2곳의 경마장은 홍콩섬과 구룡반도의 최고 번화가 인근에 위치해 있다. 또 홍콩 전체면적이 1104㎢로 영천(920㎢)보다 조금 큰 국토를 가져 지가가 비싼 것에 비교해 엄청난 규모의 경마장을 소유해 경마가 관심을 받는 것을 넘어 일상생활이 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환원사업 대명사 오션파크
한국시간으로 9월16일 저녁 8시30분 김해국제공항을 출발해 홍콩으로 향했다. 비행기로 3시간 30분가량 이동해 홍콩에 도착했고 입국수속을 밟고 호텔에 도착한 시간이 한국시간으로 새벽2시가 다 되었다. 홍콩시간으로는 새벽 1시에 가까웠다.


다음날 아침 가이드와 함께 호텔에서 15분 거리인 해해피밸리 경마장을 방문했다. 그러나 한국의 경마공원과 달리 경마가 없는 날에는 경마장 출입을 일제히 금지하고 있었다.
해피밸리 경마장은 주중에 1회 야간에만 열린다. 더위가 심한 7, 8월에는 경마가 열리지 않으며 현재는 수요일 저녁 7시에 경마가 열리고 있다. 출발 전 경마가 열리지 않는 것은 알았지만 한국의 경마공원처럼 개방할 줄 알았는데 입장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해피밸리 경마장 입구를 지키는 직원은 “경마가 없는 날 입장하려면 클럽에 신청해야 하고 입장료도 내야만 한다.”며 “내일 샤틴 경마장에서 경마가 열리니 입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쉬움에 발길을 돌려 홍콩쟈키클럽에서 운영하는 오션파크로 향했다. 오션파크는 홍콩디지니랜드와 함께 홍콩의 놀이공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주체가 홍콩쟈키클럽으로 경마장에서 발생한 수입을 사회환업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홍콩경마장은 환급율이 80%를 넘고 창출되는 수입은 학교, 병원, 복지센터 등으로 환원하고 있으며 오션파크도 환원사업의 한 부분이다.


해안가 옆에 설치된 오션파크는 우리나라의 놀이공원과 수족관을 한자리에 모아둔 것으로 1.5km에 달하는 케이블카가 가장 인상적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놀이공원과 아쿠아리움보다 규모가협소하지만 70년대 만들어진 공원으로 당시에는 대단한 것이다.
가이드 이창화 씨는 “오션파크는 홍콩디즈니랜드와 함께 최고의 놀이공원으로 알려져 있다. 홍콩은 기부문화가 발전되어 홍콩쟈키클럽 외에도 유명 연예인과 각 기업에서 기부를 많이 하는 편이다.”며 “오션파크도 기부로 시작했으며 30여년전 만들어 졌고 10여년전 한번 리모델링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자료제공 : 마사박물관 중국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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