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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20개 산재 벼농사 발달, 상업시설 없는 도림동

영천시민신문기자 2012. 11. 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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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20개 산재 벼농사 발달… 나루터가 있었던 곳
상업시설 없는 도림동

 

영천의 외각도로 35호 국도 자동차전용도로에서 청송, 안동방면으로 곧게 일직선 도로가 5km가량 쭉 뻗어 있다. 바로 도림동을 알려주는 경계역할을 하는 도로다. 이 도로의 왼쪽 넓은 평야는 대전동이고 오른쪽은 길게 도로를 따라 도림2동이 자리 잡고 있다. 도림2동의 동쪽 낮은 산을 경계로 너머는 도림1동이 위치해 있다. 두 동을 통칭해 도림동으로 불려진다. 법정동으로는 중앙동에 속해 있다.


도림동은 면적이 오미동 다음으로 가장 넓은 5.9㎢이지만 중앙동 전체인구의 0.03%에 불과한 309명이 전부다. 도림1동은 65가구에 166명, 도림2동은 57가구에 143명이다. 도림동에는 공장(2개소), 정미소(1), 주유소(2), 카센터(1), 교회(1), 구멍가게(1), 식당(3)이 있다. 이것이 마을 상업시설의 전부여서 전형적인 농촌마을에 속한다. 주 소득원은 벼농사 이지만 포도, 복숭아, 자두 순으로 밭작물이 벼농사의 면적보다 훨씬 더 많다. 국도 오른편의 낮은 산(서당갓)을 경계로 서쪽은 도림2동, 동쪽은 도림1동으로 대별된다. 국도변에서 직동길 이라는 이정표를 시작으로 도림1동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못밑마을(약 40여가구)이 위치해 있다. 1동은 못밑마을을 시작으로 안으로 곧은골, 숯골마을 순으로 3개의 마을로 구분되고 마을 안쪽에서는 다시 오른쪽으로 풍곡골 과 왼쪽의 탄곡골로 나누어진다. 풍곡은 바람이 많다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탄곡은 숯 굽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강해복 도림2통장이 저수지와 옛날 있었던 나루터를 설명하고 있다


도림1동 마을 전체에는 20여개의 저수지가 있어 수량이 풍부해 벼농사가 발달했다. 못밑마을 위에 위치한 직동지는 만수면적 4만 7,000t, 면적은 4.8㎢로 도림동에서 가장 큰 저수지다. 마을입구 정씨문중 한 며느리(서씨)의 곧은 절개를 기리기 위한 묘비 하나를 제외하면 이 마을에도 고전적 옛 문헌의 기록을 찾기는 어렵다. 특별한 자랑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1동 이동락(69)이장은 “옛 부터 우리 마을에는 부자가 많이 살았다. 수백, 수천억대의 출향인으로 부산, 양산, 일본에 공장을 하고 있는 (주)DCM(대표 정진택 62)와 부산에서 신신물류센터(대표 이동석 56)가 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또 이 이장은 “정진택씨의 경우 곧은골에 풍력발전소를 세우기 위해 주민 설명회를 가졌으며. 지금도 꾸준히 마을에 대한 개발애착을 갖고 있으며 노인회에도 경제적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1동의 서쪽 구릉 너머에 위치한 도림2동은 35호 국도를 따라 낮은 산 아래 길게 형성되어 있다. 중앙동사무소의 홈페이지에는 “도림2동은 조선조 태종 13년(1413년)때 마을 앞 하천에 돛단배가 정착하여 선창이라 불렀으며 1933년에 영천면으로 통합되어 도림동이라 칭한다.”고 짤막하게 설명되어 있다. 원래 선창이란 수문 둑이란 뜻이다. 이곳에는 오래된 고목이 두 거루 있었으며 마을 앞에는 산림이 우거져 도숲, 도십 또는 도림이라 불려 졌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길 없다. 국도를 끼고 흐르는 지금의 고현천은 옛날 이 지역사람들은 북천이라 불렀다. 도림주유소와 매산교 사이가 옛날 나룻배가 왕래하던 나루터다. 과거 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에 이 나루터는 도림동의 물자수송 거점이었다.


도로 오른쪽에 선창길 이라는 표식을 제외하고는 이곳이 나루터였다는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선창길 안쪽에는 아직도 예날 지붕을 그대로한 정미소가 1개소 남아 있다. 요즘은 각 개인 가정마다 소형 정미기가 있어 옛날 방앗간은 없어진지 오래다. 그러나 개인 정미기가 없는 주변가구를 대상으로 수시로 가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저수지와 함께 이곳 정미소가 이지역이 벼농사로 발달한 마을임을 설명해 주고 있다. 도림1동의 강해복(65) 이장은 “어릴적 앞 고현천의 수심은 2m가 넘었고 그 넓이도 20여m이상 되었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선창의 북쪽에는 흠골 이라는 마을이 있었다고 전한다.
지금은 국도 옆에 그 지명을 따서 새흠길 이라는 도로주소가 세워져 이곳이 옛 흠골이 있었다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장지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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