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천 시

고독의 존귀함 - 김대환 칼럼

영천시민신문기자 2011. 11. 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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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존귀함 - 김대환

고독은 학문 아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

 

화려함을 움츠린 낙엽과 함께 가을이 저문다. 나딩구는 낙엽과 비에 젖어 망가진 낙엽도 그 생애를 마쳤다. 우주와 상생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사계 중 가을이 애수에 젖을 비중이 가장 크다.
무엇보다도 이번 가을은 정치권의 한나라당이 그 어느때보다 더 쓸쓸하고 고독한 가을이 아닌가 느껴진다. 차제에 쓸쓸하고 고독함을 더 즐기고 배우며 느껴야 함을 인지하여야 한다. 선거의 결과를 갖고 정치의 잣대로 계속 두들겨서는 안된다. 선거는 유권자들의 선택이요 민주주의가 순산한 최대의 걸작품이다.


유효기간을 정해놓고 인간의 집단에 필요한 대표자를 뽑아내는 행사이며 뽑아낸 그 인물에게 정해진 기간동안 업무를 부여하여 일정기간이 지난 후 그 사람의 치적에 대하여 평가를 하는 보편적 과업이다.
선거결과에 따라 환희로 가득한 당과 쓸쓸한 당으로 이분화된다. 결과가 나올 때마다 국민의 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폐자쪽은 결과에 대한 논평이나 소감을 낸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종교지도자의 고독함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이맘때 산사의 햇살은 엷고 더 짧게 다가온다. 그러나 노승은 사계가 주는 변화에 대하여 미동(微動)이 없다. 그저 순응하며 즐긴다. 고독은 꼭 철학, 문학, 종교등과 관련되는 특정단이나 학문이 아니다. 누구나 가지며 느낄 수 있다.
세태가 또 하나를 자리매김한 컴퓨터 세대들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다. 오직 나뿐이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즐긴다.


이들이 차지한 대학가는 학생주차장이 찼다 한다. 부모 잘 만난 학생들이다. 그리고 대학교는 취업준비를 위한 고독의 장이 존재한다. 캠퍼스의 낭만은 한조각 전설이며 지금 대학마다의 도서관은 외로움이 감도는 공부의 장으로 변했다.
가난한 시골 예배당의 목사님은 신자수가 적음과 예배당이 낡고 추워도 고독하지 않다. 하나남의 말씀을 축복과 영광속에서 그들에게 전하며 연제나 회개하는 심정으로 기도하며 찬송가를 부른다. 어머니로부터 태어나 성년을 지나서 취업을 하고, 사업을 하며, 정치를 하고 사랑의 기쁨과 사회생활의 힘듬을 배우며 삶의 리듬도 익힌다.


낙엽 앞에 숙연해지며 고독을 철학이라해도 노승 앞에 멀어져가는 가을과 시골예배당 뜰의 감나무엔 잎이 모두 지고 감만 알싸히 엷은 가을햇살과 즐겨도 청빈한 목사님은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목덜미로 파고드는 소슬바람이 외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1억원의 피부회원권과 다이아몬드반지 가격의 운운은 서민들의 저무는 가을과 낙엽과 외로움과는 맥이 달라도 그쪽의 이번 가을은 차갑게 느껴졌을 것이다.


서민들이야 그저 삶이 어련히 힘들고 그런것이라 각인하여 외롭게 생각지 않는다.
강가 나룻배가 졸고 있다. 산골의 할머니 한 분이 달랑 오셔도 사공은 강을 건너주고 또다시 나룻배와 함께 다음 손님을 기다리며 한적하여도 외롭거나 쓸쓸해 하지 않는다.


낙엽은 떨어져 나가야만 내년 봄 새 움을 더 튼튼히 틔워 큰 나무로 성장한다. 가을이 만산홍엽으로 물들여 놓으니 비바람에 처연하고 서리가 내린 아침 태양이 뜨면 길가의 은행나무 잎은 비오듯 떨어진다. 시골길 섶의 재래종 토종 국화는 마지막 애잔함을 토해 내어 사람들에게 소담스러움의 점수를 손짓한다.
인간의 몸이 소우주라면 마음은 대우주로 생각하자. 상대와 결과를 인정하고 외로움을 외롭지 않게 고독함의 철학을 높고 귀하게 생각하면서 가을을 보내며 낙엽의 처연함에서 마음이 허한 정객들은 고독의 존귀함을 배워야 한다.


삶은 느낌과 생각이 크게 작용한다. 큰 사찰의 법당과 큰 부유한 교회당에서 기도를 해야 그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은 느낌이나 생각일까. 착각일까.
파스칼의 갈대가 저무는 이 가을 절실하다. 생각하는 갈대이기에 고독하다. 그 고독속에 인생의 그윽한 향기가 가득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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