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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안면 효리 마을, 초중학생으로 생기넘치는 곳, 효자 인물 많아 자랑

영천시민신문기자 2013. 10. 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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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안면 효리 마을
초·중학생으로 생기 넘치는 곳…효자 인물 많아 자랑거리

행정구역은 영천시 효리이지만 사실상으로 경주와 인접해 있어 지역주민들이 경주시와 생활권이 가까운 북안면 효 마을.
2008년 북안 신리회관 앞에서 서면까지 2차선 도로가 생기면서 영천시와 경주시 중간에 위치하여 교통이 매우 편리하고 조용한 청정효자 마을로 이름났으며 몇 년 사이에 귀농 귀촌가구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마을역사로는 1500년경 개척하여 예부터 살기가 좋고 많은 재물을 많이 저축할 수 있어 장재동이라 칭해지다 지극한 효자였던 박경림 선생이 자기의 선친이 사망하여 4년상을 치르면서 효행이 너무 지극하여 효리라 개칭되었다.


마을모양이 소등처럼 지형이 길게 생겨 소골, 소등 우곡이라고도 불렸다. 지금의 마을회관 자리가 과거동네 공동우물터로 전 주민의 생명수였지만 정부마을하천 정비사업으로 그 흔적마저 없다. 이조시대에는 영천시 비소면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영천군 북안면 효리로 편재되었다.
박수만 노인회장은 “사람이 처음 들어온 시기는 360년 전 밀양박씨가 제일 먼저 들어와 마을 뒤 사룡산(용이4마리) 정기를 받아 효리마을이 생기고 마을인재도 많다.”고 증언했다.

 

마을주민들 이장 노인회장 등이 함께 기념사진


효리 마을 속에는 현재의 젊은이들도 잘 모르는 생소한 7개의 골이 있다.
재네골(재물이 많은 곳), 고동골, 창록골, 재궁골, 영남곡, 점곡, 대사골, 야소곡(들이 작아 농지가 작은 곳) 등이 있다. 현재는 고동골 4가구, 점곡 1가구가 살지만 과거 옛날에는 사람이 많이 살았다. 
지금의 마을현황은 60호에 남자 55명 여자 75명 등 13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강영규 새마을지도자(51)는 “밀양박씨 집성촌으로 이웃 간의 정이 넘치고 상하가 뚜렷이 나타나 있는 예절의 고장으로 어느 골보다 효의 마을이고 어린아이를 비롯한 초·중생이 10명이 넘어서 마을에는 생기가 넘친다.”고 자랑했다.


효 마을은 작은 산촌이지만 32개 북안면 소재지에서 청년회가 가장 활성화된 곳이기도 하다.
2007년 12월에 결성된 마을의 발전효우회가 주민들의 쉼터 마을회관 부지를 사서 기증하고 각종마을행사에 금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효우회를 보면 조명재 회장을 비롯해 김기태 김종호 박경환 박재형 박병호 박시환 박홍열 박환기 박환도 박환식 박환일 박환대 회원이 마을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자연환경으로는 수십 년간 한 번도 마르지 않고 깨끗한 수질을 자랑하는 효동 저수지가 잇다.
박수만 노인회장은 “물이 깨끗하고 바닥을 드러내지 않아 큰 물고기들이 많다. 이렇다 보니 낚시인들이 많이 방문하는데 좁은 농로에 차량 통행이 어려운 경우다 허다하다.”고 설명했다.


출향인사로는 박재동 서울시 중학교장, 박정환 울산지역 중소기업진흥공단 본부장, 박조환 한국교육위원회 직원, 박환동 변리사, 박홍진 대구교육청 장학사, 박환엽 동대구세무서 직원, 박진홍 르노삼성연구소 직원 등이 있다.
또 서울대 고천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박소연 씨, 박상현 영덕군청 공무원, 박재규 전북군산여고 교사 등이 있으며 조명재 대창면장 부인 김경애(54)씨가 북안초등 교사로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마을을 이끄는 사람으로는 박재용(59) 이장, 강영규(51) 지도자, 김원호(61) 총무, 박환천(65) 박상환(57) 감사, 김숙이(61) 부녀회장, 박수만(84) 노인회장, 장기조(72) 노인회총무, 박환철(66) 장기조 박병도(63) 반장 등으로 운영되며 연중 가장 큰 행사는 어버이날 경로큰잔치다.
마지막으로 효행의 고을인 만큼 현시대에 가장 으뜸가는 효자는 한현석(48)로 대구에 거주하면서 한국철도 15년 무사고 기관사로 근무하면서 몸과 마음 행동이 올바르고 마을 경조사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는 모범 효행인으로 참가인 7명이 모두 한목소리로 거론되었다.
박수문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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