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북면 횡계마을, 옥간정 모고헌 자랑
기룡산의 맑고도 그윽한 기운으로 더위를 씻어낼 만한 곳, 바로 화북면 횡계마을이다.
역사적으로 1600년대에 김해허씨가 정착하였다가 1700년경 오천정씨인 정만양·규양형제가 정착하면서 횡계리로 부르게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정만양·정규양선생이 당시 조정에서 노론소론 등의 당파싸움이 심해져 이를 피하기 위해 이곳에 서당을 짓고 학문을 닦았다고 서당골이라 했고 지금도 집터의 흔적은 남아있다.
횡계마을은 총 41가구에 63명의 주민들이 사과와 포도, 복숭아를 주로 재배하며 평화롭게 살고 있다.
정기철 이장은 “마을에 사람이 적어 크게 내세울 마을연중행사는 없지만 5월 경로잔치는 면단위로 실시해오고 8월15일 광복절에 동네잔치를 작게나마 해왔고 그나마도 작년에는 여건이 맞지 않아 건너뛰게 되었다.”며 “올해는 찬조금을 받아서 비용을 조달해 어르신들에게 점심대접을 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지난 7월에는 영천시청과 화북면사무소 직원 40여명이 합동으로 농촌일손돕기에 동참하여 일손이 부족한 고령농가를 돕는 훈훈한 일이 있었다. 횡계마을 구명회 씨의 양파밭에서 수확작업을 돕고 농촌사랑과 현장 체험 활동을 실천한 것이다.
정기철 이장과 부모님이 복숭아를 선별하고 있다
이날 일손돕기는 주민들이 고령화로 양파수확에 손을 놓고 있던 농가를 선정하여 3개부서가 합동으로 수확활동을 전개했는데 농가는 일손을 도움 받음으로 인해 감사함을 전했고 공무원들은 현장에서 땀 흘리는 현장체험을 통해 애로사항과 앞으로 나아갈 농촌행정을 발굴하는데 큰 도움을 얻었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마을의 으뜸 자랑거리를 옥간정과 모고헌으로 꼽았다. 모고헌과 옥간정은 조선 숙종 때 정만양·규양 형제가 건립한 누각으로 주자의 도학적인 삶을 꿈꾸며 후학을 가르쳤던 곳이다. 낡은 정자는 다소 쇠락했지만 말끔히 단장된 관광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모고헌(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1호)은 조선 숙종때 성리학자인 정규양 선생이 숙종27년에 지은 집으로 처음에는 ‘태고와’라 하였으나 영조6년에 문인들이 수리해서 모고헌이라 했다. 선생은 형인 정만양 선생과 이곳에서 제자를 양성하기 위해 세운 옥간정을 왕래하였으며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뜻으로 훈과 지를 호로 삼았다.
도남동의 완귀정과 함께 근경이 아름다운 대표적 건축물로 꼽히는 옥간정(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0호)은 훈수·지수선생이 후학을 길러낸 정사로 숙종 42년(1716)에 횡계천변 언덕에 세운 건물이고 사교당인 횡계서당과 함께 300여년이 넘는 건물이다. 이곳에서 영의정 조현명, 형조참의 정중기, 승지 정 간 등 많은 석학들을 배출했고 나라에서 여러차례 관직을 제수했으나 사양하고 일생동안 학문에만 전념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여름철이면 정자 밑을 흐르는 맑고 깨끗한 계곡의 그늘에서 피서를 즐기기 위해 가족단위의 손님들이 끊임없이 찾아오고 있다.
주민들은 “우리 마을의 관광지를 찾아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휴가를 즐기고 남겨놓는 쓰레기에 마을이 몸살을 앓게 되므로 건전한 시민의식을 가지고 내 집처럼 생각해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좋겠다.”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마을의 출향인은 전 외교관 정화태 씨, 대구시청 정원제 씨 등이 있다.
박순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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