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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최고 금호읍 봉죽리 - 오직 포도농사 하나만

영천시민신문기자 2013. 6. 1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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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포도농사 하나 만으로 살아가는 유복한 마을
              금호읍 -봉죽리

 


영천시 서남쪽 끝자락 유봉산을 병풍으로 바람을 등지고 정남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유복하게 살아오는 금호읍 봉죽리.
그렇게 크지 않는 면적에 보여줄 것도 내 놓을 것 하나 제대로 없이 오직 포도농사 하나로만으로 마을을 꾸려가고 있다. 굳이 행정구역으로 표시한다면 영천시 금호읍 봉죽리가 이 마을의 주소다. 금호읍사무소에서 동쪽으로 약 2km 위치에 있는 이 마을 역시 1리와 2리가 나누어져 있으나 인구는 두 마을 모두 합쳐야 70가구에 140여명이 전부다. 그렇게 높지도 크지도 않는 유봉산이 이 마을의 태실이다 이 유봉산의 급경사가 남으로 뻗으면서 평야도 늪지대도 아닌 경사분지를 이루어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유일한 포도 농사의 터전을 이루었다.


특징 이라면 농사환경이 최적으로 구성된 마을 이라는 것이다. 1리와 2리 두 마을 모두 수량이 풍부한 저수지 한 개씩을 나누어 갖고 있다. 1리에는 ‘곡제’ 2리에는 ‘해현지’가 있어 농업용수 공급은 최상을 유지하고 있다. 또 구릉지가 정남으로 시원스레 트여있어 일조량이 풍부해 마을의 주 작물인 포도농사를 하기에 적합하다.

 

봉죽 1.2리 두 이장이 해현지 둑에서 정겹게 저수지 내력을 설명하고 있다


마을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원래 유봉산이 대나무가 많이 우거져 있다하여 일대가 죽방마을로 불려 지기도 했다. 이 마을의 옛 이름으로는 죽방(竹坊), 새터(新基), 곡촌(谷村)으로 나뉘어 불려진다. 죽방은 지금의 죽림사를 중심으로 남쪽방향으로 형성된 마을로 현재 15가구정도 모여있다. 지금도 죽림사 입구에는 길이 40m여 구간에 대나무 1000여 그루가 현존하고 있다.  새터는 봉죽2리의 구심마을로 가장 넓은 구릉지를 갖고 있으며 이 마을 대부분의 농토에 해당한다. 곡촌은 새터의 북쪽 골짜기에 옹기종기모여 살아가는 작은 마을로 지금의 봉죽1리가 여기에 해당된다.


마을의 유적이라면 죽방에 위치한 죽림사(竹林寺)가 유일하다. 죽림사는 신라 헌덕왕 1년에 창건된 것으로 임란 때 전소하고 그 후 다시 중창하였으나 한국전쟁 당시 폐허가 되어 현재 건물은 그 후에 복원한 것이다.
봉죽2리 37번지 일대 과거 일본군이 비행기 격납고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원형을 유지한 채로 아직 남아있어 이색적 운치를 더해준다.

 

이 콘크리트 구조물은 산발적으로 봉죽리 전체마을에 군데군데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해현지 상류 물속에도 1개가 파손된 채로 잠겨있고, 못 둑 아래는 철거되어 겨우 그 흔적만 희미하게 확인 할 수 있다. 또 이 구조물은 신월리 입구 한 목재소 뒤편 농로에도 격납고로 보이는 콘쿠리트 구조물이 한 개 보여 지고 있다.
1리 지근수66) 이장과 2리 양문식(65)이장은 나란히 사이좋게 마을의 대소사를 서로 사의하는 다정한 이웃이다. 두 이장은 이구동성으로 “우리 마을은 조용하면서도 부지런한 마을이다. 화합으로 서로를 돕고 이웃 간 우정이 돈독한 것 이외 내 놓을 것이 없다.”며 소탈해 했다.


3년 전 1리 에 정각사 라는 사찰이 세워지고 또 최근 봉죽 2리 에 전원주택 3가구가 들어서 이 마을에도 미세한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지만 봉죽마을은 두 이장은 흔들림 없이 굳건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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