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명명 600주년 맞이하며
전민욱 문화관광해설사
우리 고장의 지명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골벌(骨伐)이란 이름으로 삼국사기 권 제2 조분 이사금(助賁尼師今) 조에 ‘7년(236) 봄 2월에 골벌국왕(骨伐國王) 아음부(阿音夫)가 무리를 이끌고 와서 항복하였으므로 집과 토지를 주어 편히 살게 하고 그 땅을 군으로 삼았다.[七年 春二月 骨伐國王阿音夫 率衆來降 賜第宅 田莊安之 以其地爲郡]’라는 기록이 처음이다.
이후 영천 지역은
절야화군(切也火郡)이 되었다가 다시 임천현(臨川縣), 도동현(道同縣)[본래 도동화현(刀冬火縣)], 장진현(長鎭縣)[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지역], 사정화현(史丁火縣), 민백현[본래 매열차현(買熱次縣)]이 되고 신라 경덕왕 때 임천과 도동, 장진현은 임고군(臨皐郡)으로 고치고
사정화현과 민백현을 합쳐 신녕현으로 고쳐 불렀다.
오수동 유봉산 정상에서 본 영천시전경
신라 말에는 고울부(高鬱府)로 불리다가 고려 초에 영주(永州)로 고치고 별칭으로
영양(永陽)이나 익양(益陽)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로 인하여 영천 출신의 인물 중에 익양군(益陽君)이나 영양군(永陽君)으로 봉해진 인물이 나오게
된다.
조선 태종 13년(1413)에 지방 행정구역의 명칭을 개정하게 되는데 그 내용을 조선왕조실록 태종 26권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태종 26권, 13년(1413 계사 / 명 영락(永樂) 11년) 10월 15일(신유) 1번째 기사 지방 행정 구역의 명칭을 개정하다 각 도 각
고을의 이름을 고쳤다. 임금이 하륜(河崙)에게 이르기를 “전주(全州)를 이제 완산부(完山府)라고 고치고서도 오히려 ‘전라도’라고 칭하고
경주(慶州)를 이제 계림부(鷄林府)라고 고치고서도 오히려 ‘경상도’라고 칭하니, 고치는 것이 마땅하겠다.”하니 하윤이 말하기를 “유독 이 곳만이
아니라 동북면(東北面)·서북면(西北面)도 또한 이름을 고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하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옳도다.”하였다. 드디어 완산을 다시
‘전주’라고 칭하고 계림을 다시 ‘경주’라고 칭하고 서북면을 ‘평안도(平安道)’로 하고 동북면을 ‘영길도(永吉道)’로 하였으니
평양(平壤)·안주(安州)·영흥(永興)·길주(吉州)가 계수관(界首官)이기 때문이다.
또 각도의 단부(單府) 고을을 도호부(都護府)로 고치고
감무(監務)를 현감(縣監)으로 고치고 무릇 군(郡) ·현(縣)의 이름 가운데 주(州)자를 띤 것은 모두 산(山)자, 천(川)자로 고쳤으니
영주(寧州)를 영산(寧山)으로 고치고 금주(衿州)를 금천(衿川)으로 고친 것이 그 예이다(고려시대부터 이전까지 영천 이름은 영주라 했는데
이때부터 주를 천으로 바꿔 영천으로 명명했다).
조선왕조실록의 날짜는 음력이기에 이 날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1413년 11월 17일이
되는데 세월이 흘러 올해가 우리 고장의 고을 명칭이 영천(永川)으로 명명된 지 60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이다.
그러면 왜 우리
고장의 명칭이 영주(永州) 또는 영천(永川)이라 명명되었을까? 이는 조선 전기 대문장가인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이 지은 명원루(明遠樓)[현
조양각(朝陽閣)] 기문에서 말한 ‘이 군을 영(永)이라 일컫는 것은 이수(二水)를 취한 뜻이니 대개 이수의 근원이 모자산에서 나와 두 갈래로
나뉘어 다시 꺾어져 남쪽으로 흐르다가 이 고을 앞에 이르러 하나로 합했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지은 것이다.
[稱郡曰永取二水之義盖二水發源於母子山分二派折而南流抵郡前合爲一所以揭號也]’에서 찾을 수 있다.
고을 이름인 영(永)을 파자하면 두 이(二)와 물 수(水)가 되는데 모자산(母子山)[영천의 진산(鎭山)인 보현산(普賢山)]에서 발원하여 동서로 나뉘어 고을을 감싸고 흐르다가 고을 앞에서 다시 합하여 흐르기 때문에 고을 명칭으로 명명하였다고 하니 대개 두 개의 큰 물줄기가 흐른다 함은 농토가 비옥하여 사람 살기 좋은 고장을 이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영천(永川)이란 이름을 얻은 600주년이 되는 2013년을 우리 고장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삼기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읍면이 현재의 명칭을 사용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부터이니 내년이 그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나라에서는 조선시대의 행정구역을 통폐합하여 만든 당시 지번 부여가 들쭉날쭉하였으며 도시화 등으로 인해 지번이 혼재되어 있어 새로운
주소체계 도입이 절실하여 도로명 주소를 확정 내년(2014년)부터 사용하기로 하였다. 물론 오랜 시간 사용하여 오던 명칭을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나 미래를 위한 결정이기에 빠른 정착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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