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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호국평화벨트사업 영천이 들러리인가 - 조영제 재향군인회장

영천시민신문기자 2011. 12. 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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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 호국평화 벨트사업에 영천이 들러리인가


국가보훈처는 2010년6월 9일 현충시설심의위원회 심의를 개최 6·25전쟁 민족 최후의 보루였고 인천상륙작전과 더불어 대반격의 출발점, 낙동강 방어선 현장에 낙동강 호국평화벨트사업을 추진하기로 의결했다.
이날 심의 과정에서는 현재까지의 보훈선양사업은 추모 위주의 사업이었던 것을 교육과 체험시설을 보훈선양사업에 포함시켜 국가 정체성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서 국가보훈처가 중심이 되어 호국평화벨트조성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낙동강 호국평화벨트 사업은 6년간(2010~2015) 총 사업비 1500억원(국비·지방비)으로 1~3단계로 나누어 추진하며 대상지역은 6·25전쟁 낙동강방어선 격전지 8개 시·군으로 호국기념관, 상징공원, 호국교육 및 체험시설 등을 건립하게 된다.
1단계 사업으로 낙동강 호국평화공원(칠곡) 460억원, 호국기념관 등(영천) 100억원, 영덕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 240억원을 투입 2013년까지 조성을 마무리 한 후 2·3단계 사업은 나머지 5개 시군이 나누어 추진한다.


그럼 여기서 영천이 칠곡보다 영덕보다 사업비가 적게 나온 이유를 알아봐야 한다. 영천전투와 신녕전투가 칠곡 다부동전투와 영덕장사상륙작전의 규모와 작전의 성격, 전투의 승패와 작전의 중요성을 비교해보자.
영천전투는 육군8사단이 대승을 거둔 대첩이며 반격의 전환점에 결정적인 역할을 제공했고 신녕전투 또한 육군6사단이 북한군을 초토화 시켜 영천으로 진격을 못하게 막았다.
다부동전투는 육군1사단과 북한군과의 밀고 밀리는 소모전을 폈고, 영천전투는 북한군을 괴멸시키고 여력을 주지 않았기에 더 높이 평가될 수 있다. 


영천서 괴멸시킨 것이 한국전쟁에 큰 분수령 이었다고 한국전사에서 인증을 한다.
영덕 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기위해 북한군을 눈속임하기 위해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인 1950년 9월14일 새벽4시 장사해안에 접안하다가 LST문산호가 좌초해 학도병 772명 중 사상자 231명을 내면서 피비린내 나는 사투를 벌인 작전이다.


이 세곳의 전투를 비교해보면 영천전투의 승리가 다른 두곳 보다 중요하면 중요했지 못하지는 않다. 또한 영천에는 보훈처가 하는 보훈선양사업인 추모시설 영천호국원이 있고  안보교육과 체험시설은 3사관학교에 교수진과 병영시설을 이용하면 같은 사업비인 경우 더 크게 사업을 할 수가 있다.
사업의 중요성 논리가 아니고 힘의 논리가 여기에도 작용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중앙정치에 힘이 있으면 사업비를 많이 가져오고 힘이 없으면 적게 가지고 오는 논리가 보훈정책 안보정책에도 적용이 되니 할 말이 없다.


이제 안보단체, 보훈단체, 시민단체가 나서야 할 때이다. 사업의 진척도를 보자.
호국평화벨트 사업은 2010년에 시작하여 2013년에 1단계가 끝난다.
칠곡군의 경우 사업비 460억, 군비추가 65억으로 2010년 8월5일 낙동강  호국평화공원 건립 추진위원회 총회, 2010년 8월12일 낙동강 호국평화공원 조성 주민 공청회, 2010년9월3일 ‘낙동강 호국평화공원’ 기공식을 가졌다.
영덕군의 경우 사업비 240억, 160억원 증액신청 2010년3월23일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 건립추진위원회 창립총회 개최했고 2011년2월16일 김관용 지사는 해상전시관 조성이 필요하다고 이를 위해 100억원의 추가사업비 지원을 약속했다.


영천시의 경우 사업비 100억원에 2009년 1월22일 호국평화공원 심포지움, 2011년 10월 호국기념관 설계용역, 호국기념관을 조성, 영천전투 재현관, 한국전쟁영웅관, 호국교육을 위한 컨퍼런스룸 등 조성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전쟁때 영천의 역할과 현재 사업의 진척과 사업비를 알고 다른 지방자치단체 사업비와 진척도를 알았다. 


지금부터라도 국회의원, 시장, 도의원, 시의원, 안보단체, 보훈단체, 3사관학교관계자, 호국원관계자가 호국평화공원 건립추진위를 구성해서 각각의 임무를 부여해서 중앙부처로 달려 나가자.

거제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이름그대로 6·25당시 포로들을 수용한곳이다. 현재는 당시의 유적들이 거의 허물어지고 다쓰러진 벽뿐이다. 거제시는 이것을 상품화해 12년 만에 1000만명의 유료 관람객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전쟁의 산물인 포로들의 생활을 스토리텔링해서 성공을 거두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는데 영천은 기본시설 갖추어져 있다.


신녕 성환산에 휴전후 승전기념탑이 전투에 승리한 그 자리에 건립되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또 영천 문화원 옆에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3사관학교에 군인을 위해 군사교육만 할 게 아니라 국민과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과 체험을 하고 호국원에 호국영령들의 추모시설을 이용하고 참전용사와 시민들의 증언에 마현산 정상에 중무장 화포가 설치되어 화룡동 방향으로 발사하여 북한군과 교전을 한 사실만으로도 거제시보다 유적과 사실관계가 더하다.
또 후방치고 군부대도 많다. 탄약창과 항공단, 공병단, 3사관유격장도 활용을 해서 수익사업을 연구해야한다.
조영제 재향군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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