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천 시

자양서당, 조선시대 후진양성에 힘쓰던곳 1975년 현재 위치로 이건

영천시민신문기자 2018. 9. 1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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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양서당
조선시대 후진양성에 힘쓰던 곳… 1975년 현재 위치로 이건
경북유형문화재 제78호 자양서당



가끔 텔레비전을 통해 서당의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서당 안에는 넓은 청마루에서 훈장 선생님의 고고한 목소리로 읽는 글을 따라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교육의 도시 영천에도 이렇듯 후진양성을 위해 공부하는 서당이 있다. 바로 임고면 삼매리에 위치한 자양서당이다.
자양서당은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공간이지만 영천댐 주변의 수려한 자연환경 속에서 학문을 배우는 곳이다.  


1975년 8월 18일 경북유형문화재 제78호로 지정된 자양서당은 1546년(명종 2) 김응생(金應生), 정윤량, 이의 등이 향리의 후진교육을 위해 자양면 노항동에 창건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후대에 중건된 것으로 1976년 7월 영천댐 수몰로 임고면 삼매리로 이건하면서 담장을 두르고 일각문을 세웠다. 서당 내에는 1553년 퇴계 이황 선생의 친필로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일반적으로 서당 건물에는 전퇴(前退)가 있으나 이 건물에는 없으며, 서생들이 모여 글을 읽는 대청과 숙박을 위한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집으로 오른쪽 2칸은 대청이고 왼쪽 2칸은 온돌방이다. 태백산맥 일대의 주거지에서 마루가 없는 귀틀집이나 토막집 등의 원초형 가옥에서 볼 수 있는 단순하고 소박한 형태이다.



자양서당의 바로 옆에는 충무공 이순신과 김완 장군이 함께 모셔져 있는 동린각이 있다. 자양서당을 건립한 김응생 선생의 세 번째 아들이 바로 김완 장군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역사가 함께 숨 쉬고 있는 곳이다.


자양서당은 영천시내에서 영천댐으로 12km정도 가다보면 영천댐공원 가기 전 좌측으로 들어가 자호천을 건너 조금만 올라가면 있다.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자양서당과 동린각은 잘 관리되고 있으나 다만 입구가 좁아 버스 등 대형차량 통행이 원활하지 못하고 도로편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흠이다. 


현장답사를 했던 지난 8일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지나갔다가 동네 주민은 만나 길을 물어 자양서당을 찾을 수 있었다.
과수농사를 한다는 주민은 “자양서당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서당과 동린각이 함께 있어 동린각으로 착각하고 지나치는 사람도 있다.”며 정확하게 위치를 설명해 주기도 했다.


자양서당 관리자를 만났다. 관리자는 “자양서당과 동린각은 영천시민보다 서울과 경기도에서 관람하기 위해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오고 있다.”며 “1975년 영천댐 건설로 인해 수몰지역에서 현재의 이곳으로 옮겼다. 처음 자양서당이 있던 자양면 노항동은 사라졌지만 역사는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김장주 전 경북도행정부지사가 이곳 출신이다”고 설명했다.


관리자는 또 “자양서당 맞은편 땅을 매입하여 차량통행이 원활하도록 도로와 주차장을 만들려고 했으나 어려움이 따른다. 앞으로 입구만 확장되면 자양서당과 동린각에는 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올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곳 출신인 김장주 전 부지사는 “수몰민들은 고향을 가고 싶어도 갈수 없는 입장이다. 자양서당과 동린각은 우리 수몰민의 고향처럼 느껴진다.”며 “자양서당과 동린각을 보면 고려시대, 조선시대 아니 더 예전부터 영천사람들은 교육과 충절이 우리의 마음속에 항상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을 알수 있다.”고 말했다.


김 전 부지사는 “1975년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면서 지역 어르신들 고충(협소한 입구)을 들었다. 동린각의 김완 장군과 자양서당의 김응생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공직을 떠났지만 고충해소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인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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