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조양각 개방 하자

영천시민신문기자 2015. 3. 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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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각 개방 하자

 

 

지난 20일 조선통신사와 관련한 인문강좌의 일환으로 부산대 한태문 교수의 강좌가 신축한 영천향교 국학학원에서 있었다. 수십년동안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조선통신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한 한태문 교수의 강의는 그 내용의 정확성과 촘촘한 구성력, 사진자료를 통한 이미지 전달 그리고 강의를 풀어나가는 말솜씨까지 가히 명강의라 할만 했다. 

 

하지만 조선통신사의 이야기와는 별개로 한태문 교수의 강의 중 필자의 관심을 온통 쏠리게 했던 대목이 있다. 그것은 조선통신사에게 전별연을 벌여주었던 조양각에 관한 것으로, 내용인즉슨 왜 조양각을 개방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조양각은 지난 2006년 전면 해체 중수를 한 후 주위에 철제 울타리를 쳐 출입을 막았고 현재까지 출입이 통제돼 있다.


조양각처럼 튼 누각의 경우 이처럼 울타리를 쳐 출입을 막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영남7루인 밀양의 영남루도 진주의 촉석루, 안동의 영호루도 모두 개방된 누각이다. 밀양인들은  영남루에 올라 누각 아래로 흐르는 밀양강의 바라보며 아랑 전설에 관한 이야기를 자녀들에게 들려줄 것이고 진주인들 역시 촉석루에 앉아 진주남강의 푸른 물결을 바라보며 논개이야기와 함께 위난의 시기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진주인들의 정신을 이야기할 것이다. 무릇 정신의 계승도 체험을 동반하였을 때 더 진중하고 절실해지는 것이리라.


우리의 조양각은 영천인들에게 정신적 뿌리가 되고도 남을만한 장소이다. 영천인의 정신적 지주인 포은 정몽주 선생이 당시 부사였던 이용과 함께 ‘명원루’란 이름으로 창건한 누각이 바로 조양각이다. 이곳에서 포은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명현들이 시를 남겨 현재까지 그들의 시가 편액 되어 남아있다. 또 조선통신사 사절단에게 전별연을 벌이던 곳이며 조양각 아래 넓은 들에서는 마상재 공연이 펼쳐졌던 곳이다. 현재 조양각 아래로 영천의 젓줄인 금호강이 흐르고 있으며 삼산의 하나라고 일컬어지는 채약산이 정면으로 보이는 영천의 중심지이다.


조양각 복원 이후 출입을 통제하였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당시 영천시민들의 몰지각한 문화적 인식이 한 몫 했을 것이다. 복원 전 조양각은 취객과 불량학생들의 전유물로 깨진 술병과 쓰레기들로 몸살을 앓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별도의 관리인이나 청소인을 둘만한 여건이 못되었으므로 부득이 통제를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지금은 문화재를 바라보는 시민의식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또 관리나 청소를 하는 인력을 배치할 만큼 살만해지기도 했다. 관리인을 따로 두지 않더라도 자발적인 문화재 지킴이들의 활동도 기대해볼만 하다.


사람들이 신발을 벗고 누각에 오르고 체온과 손길로 어루만져 마루가 반질반질 윤기 나는 영남루와 촉석루, 영호루… 조양각도 사람의 옷깃에 스치고 정성어린 손길로 쓰다듬어 마루와 기둥이 반질반질 윤기가 나기를 기대해 본다.
더불어 금호강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자녀들과 조양각에 올라 포은선생의 ‘충효예의’를 되새기고 조선통신사 전별연 재연과 더불어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의 공간으로 재탄생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최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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