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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밭골 60년대 최고 중심지, 영천시 과전동

영천시민신문기자 2013. 9. 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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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많이 심어 조밭골, 60년대 영천 최고 중심지

                  중앙동 과전 마을

 

과전동은 영천시내의 여러 동네 중 가장 지역이 좁은 곳이다. 동쪽으로 창구동, 서쪽으로 성내동, 북쪽으로 교촌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금호강(남천)이 흐르고 있다. 현 세중환경산업(구 동산약국) 앞에 있던 우물이 옛날 영천성 안에 있던 두 곳의 샘터 중 한 곳으로 매우 중요한 구역이었다고 한다.


골목시장이 생기기 훨씬 이전에는 골목시장 강 쪽 골짜기 일대의 마을을 조밭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옛날 이곳에 밭이 있었으나 토질이 메말라서 조를 많이 심었고 그것이 조밭ㆍ조밭골로 불려진 것이다.


이후에는 또 밤나무를 많이 심어 한때 율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또 성내동과 과전동의 중간지점 산등성이는 두 지역 중 어느 곳에나 속할 수 있다는 의미로 쌍속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쌍속골이라 불리던 서과동, 조밭골이라 불리던 양구동과 지참동, 그리고 창구동의 일부지역이 합해져 현재 과전동의 경계를 이루게 된 것이다.


양구동, 서과동, 지참동은 내서면에 속해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영천면에 편입되고 1981년 영천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중앙동에 속하게 되었다.
과전동에서 30년째 통장을 맡고 있는 조희대(72)씨는 과전동이 60~70년대 영천 최고의 중심지였다고 말한다. 특히 영남병원, 조소아과, 강내과, 대동한의원, 춘포당한의원 등 병원들이 밀집해 있었고, 동산약국, 현대약국 등 큰 약국들이 모두 몰려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영천 최고의 금은방과 서점도 모두 이곳에 있었는데 지금은 현대약국을 마지막으로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진 명칭들이 되었다.

 

                       통적부를 펼치며 과전동을 설명하는 조희대 통장


최근까지 형태가 남아있던 골목시장도 이제 그 위상을 역사에 묻게 되었다. 숭렬당 주차장 부지에 편입된 시장의 부지매매가 완료되어 얼마전까지 거주하며 소소하게 물건을 팔던 상인들마저 모두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60년대 호황을 이루었다던 골목시장 내 영양 양조장도, 온수 목욕탕도 그리고 생선을 팔던 골목시장 상인들도 이제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중 통장 조희대씨가 운영하는 관음사는 이미용재료를 취급하던 옛 위상은 사라지고 조그만 구멍가게가 된지 오래이지만 45년 가까운 기간 동안 그 상호를 사용하며 옛 흔적을 현재까지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적산가옥이었던 경찰서장관사는 몇차례 리모델링을 거쳐 옛 형태를 찾아볼 수 없으나 현재까지 그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과전동에는 현재 100여가구 약 15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60~70년대 지어진 집들이 아직 버티고 있으며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던 노인들이 독거하고 있는 곳이 많다.
시청 앞에서 영광당 안경점을 운영하고 있는 전시식(55)씨는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자녀들과 함께 4대가 과전동에 거주하고 있다. 2011년 김관용 도지사가 4세대 다복가정으로 지정하고 방문하여 격려하기도 했던 곳이다.


이지역 출향인사로는 전 농림수산식품부 차관보를 지낸 박철수(53)씨가 있다.
과전동은 통장을 비롯하여 새마을지도자 진종철(55), 노인회장 노재목(70), 노인회여성회장 전순옥(85)씨 등이 동민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또 조밭골 출신들로 구성된 ‘조밭골 사람들’이라는 모임이 10여명 정도의 회원수를 유지하며 20년 넘게 모임을 갖고 친목을 도모하고 있기도 하다.
의병대장 창대 정대임 장군의 업적을 기린 창대서원(향토문화재)이 있다.

-황태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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