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천 시

인생의 절반을 봉사와 함께 했어요, 우애자 여성단체협의회장

영천시민신문기자 2013. 2. 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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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절반을 봉사와 함께 했어요
                            우애자 여성단체협의회장

 


우애자 여성단체협의회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제가 신문에 날 일을 한 것도 없는데 인터뷰라니요. 아이고 사양하겠습니다.”라고 손사례를 쳤다. 그러나 지역여성들의 사회활동과 봉사참여를 독려하고 여성인권을 알리자는 취지라는 말에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우애자 회장은 영천시 남부동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영천에서 살고 있는 순수 토박이다. 결혼 후 젊은 시절부터 배운 미용기술로 미용실을 개업하고 봉사와 첫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 매주 지역을 위해 크고 작은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우애자 회장은 “1970년대 중반 처음 미용실 문을 열고 봉사를 시작했다. 지금은 나자렛집, 마야요양원 등 봉사의 손길을 필요한 곳이 많았지만 예전에는 지금보다 어려워도 모두가 힘든 시기라 희망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우애자 회장은 또 “지금은 각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지만 70년대에는 일은 마친 야간에 미용봉사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학생들을 위해 늦은 밤 뜻 있는 사람들과 어둠 속에서 희망원까지 걸어 다니던 때가 운치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우애자 회장

 

올해로써 9년째 대한미용사회 영천시지부장을 맡고 있는 우애자 회장은 미용봉사를 시작으로 사회활동의 폭도 넓혀가고 있다.
남모르게 선행을 해 왔던 것이 알려지면서 4년전 영천지역 모든 여성단체를 총괄하는 영천시여성단체협의회장을 맡게 됐다.


오로지 봉사만 생각했던 우 회장에게 여성단체협의회장은 무겁기 만한 짐이었다. 처음에는 앞장서서 봉사만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여성단체협의회장의 자리는 지역여성들을 대변하는 자리의 역할까지 소화해야 했다.


우애자 회장은 “처음 여협회장을 맡을 때 정말 힘들었다. 지역여성들을 대변하고 여성들의 사회참여도를 넓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물론 봉사활동은 가장 기본이 되었다.”며 “4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지역에서도 여성들의 인권이 높아짐은 물론 사회참여가 많이 확대되었다.”고 웃음을 지었다.


여러 봉사활동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을 묻자 우 회장은 “봉사활동에도 금전적인 문제가 따른다. 봉사를 위해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여러 가지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했던 것이 기억에 생생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하여 우애자 회장은 “이제 여협회장을 그만 둘 때가 됐다. 처음 회장이 되면서 지역에 올바른 여성회관이 없는 것이 가장 가슴 아팠다. 마무리는 못 짓지만 현재 여성회관이 진행 중인 것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앞으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역여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많은 일과 봉사활동을 전개한 우애자 회장은 2009년 영천시 자랑스런 시민상, 2010년 경북도민상, 2012년 대통령 표창을 받는 등 많은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우애자 회장은 남편 박종범씨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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