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산 정기로 장수마을 인정…상수원보호구역으로 발전 저해
자양면 용화마을
본래 영천군 자양면의 지역으로서 용화산 밑에 용화사가 있었으므로 용화골, 또는 용화곡, 용화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의 통폐합에 따라 용화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여러 개의 작은 자연부락들로 큰마을을, 건넛마을, 아린머리, 운태골 등이 있으며 용화골 입구에 있으며 가구 수가 많은 가장 큰 마을로서 큰 마을 또 큰 마실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훌륭한 인재가 많이 났는데 일본인들이 침입하여 산의 맥을 잘랐더니 용이 승천했다고 하며 용화라는 이름이 거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건넛마을은 물건너 있으며 큰마을과 접해 있고 용화못은 용화 북쪽에 있는 못이며, 운태골은 용화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서 지대가 높아서 구름이 늘 덮여 있다 하여 유래된 명칭이다. 운태골에서 화북면 정각리로 넘어가는 고개인 결당재, 국시골은 용화 서쪽에 있는 골짜기 이름이며 시루봉은 운태골 서쪽에서 화북면 횡계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마을의 주변 전경을 둘러보면 마치 한폭의 동양화가 그려진 병풍을 펼쳐놓은 듯하다. 해발 960m인 기룡산의 여러 산맥들이 뻗어 있다가 갑자기 낮아지며 좁은 계곡을 만들고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내(川)가 마을에서 모이며 가운데를 흘러내려가고 기암절벽들과 영천댐의 큰물이 조화를 이루며 장관을 이룬다.
27가구 35세대, 80여명이 단란하게 살고 있으며 평균연령 70~80대에 이르는 마을의 이광태 이장은 “네 집을 제외하고는 모두 80세 전후의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농사일을 하며 지내고 있으니 장수 마을이라 해도 허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물과 산이 뿜어내는 정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덧붙이며 “지금 많은 귀농인들이 우리 마을에 이주해 오고 싶어 하지만 빈집이 없을 뿐 아니라 상수원보호구역이라 새로 집을 지을 수도 없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자랑했다.
마을의부녀회장과주민들이배추를다듬고있는모습
마을의 큰 행사로는 주민들 전체가 마을단장을 위한 풀베기 및 청소를 년2회 실시하면서 음식을 마련해 함께 나누어 먹으며 즐기는 마을만의 잔치가 열리고 어버이날행사는 이장의 주선으로 관광을 보내드린다고 한다.
이 마을 주변에는 유난히 용(龍)과 구름(雲), 묘각(妙覺)이라 이름 붙은 것들이 많다. 산 이름이 기룡산이고, 산에 안긴 절은 묘각사이며 심지어 계곡 이름도 묘각곡, 다리 이름 역시 묘각교다.
마을의 한 어르신은 “아마도 묘각사에 얽힌 전설 때문인 것 같다.”고 한다. 설화에 따르면 신라시대 화엄의 진리를 깨달은 의상대사가 이곳에 절을 연다는 소문을 들은 동해 용왕이 말을 타듯 달려와 산의 이름이 기룡산이 됐다하고 의상대사의 설법을 들은 용왕이 홀연히 묘한 깨달음을 얻고 하늘로 승천하면서 오랜 가뭄을 해갈하는 단비를 뿌리자, 의상대사가 절의 이름을 묘각사로 지었다고 전한다. 이런 전설 때문인지 가뭄이 심해지면 묘각사에서 자주 기우제를 지내왔다고도 하였다. 이 절은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조선 영조 36년(1760년)에 중건되었고 대한 불교조계종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로 유명세도 타고 있다.
용화마을은 기룡산을 등지고 안온하게 앉았고, 운곡지와 묘각곡을 품은 배산임수형의 지세로, 골짜기 끝에는 작은 산이 버티고 있어 좋은 기운이 빠지지 못하게 가두는 형국이므로 결국 장수마을 뿐만 아니라 명당으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듯하다. 마을출신으로는 박도현 청통면장이 있다.
박순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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