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권력무상 = 인생무상 - 김대환 칼럼

영천시민신문기자 2012. 8. 1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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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무상 = 인생무상 - 김대환

         뇌물의 그림자 갇혀버린 슬픈현상 

 

내 그럴줄 알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국회의원 특권 지양과 쇄신을 한다고 벼르고 있더니 결국 쇄신이나 개혁은 밥그릇과 자리수 다툼으로 구호에 그쳤을 뿐이다.
80년대 제5공화국 당시 서울장안엔 한 명의 여자(장영자)가 큰손으로 불리며 정계와 재계의 큰 인맥을 이용하여 2000억원대의 사기행각을 벌여 정·재계를 발칵 뒤집고 부부(장영자·이철희)와 관련자 이규광(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씨 외 은행장 2명 등 모두 32명이 구속되었다.


이 사건을 보는 이웃 일본에서는 대한민국을 당시 아주 우습게 보고 평가하였다. 어떻게 국권이 엄연히 존재하는 나라에서 여자 한 명이 수 천억원을 주물러 정계·재계를 엎지를 수 있느냐며 당시 우리의 경제를 일본에서는 상당히 평가절하 하였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경제를 후진국 경제로 찍었다.


3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그동안 많은 곡절끝에 2만불 시대를 넘고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했다.
우리의 저력은 은근과 끈기다. 아리랑과 흰옷의 인내하는 민족이다. 장하고 말고다. 그런데 여기 와중에 큰 사건이 터졌다. 자연재해가 아니고 인재다. 정권말기라 해도 현직 대통령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이 저축은행 등으로부터 그까짓 돈 7억6,000만원 수수혐의로 구속되었다. 어떤 이유보다 본인의 판단이 흐렸다.


영포 라인으로 부르던 최시중, 박영준씨에 이어 3인방이 모두 구속되었다. 인생무상이야 애초 삶의 여정이라 어쩔 수 없지만 권력무상과 화무십일홍을 그렇게 몰랐단 말인가.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지 않을 때 정가에서 깨끗이 손씻고 물러났어야 했는데 동생이 청와대 주인이 되었을 그때이다. 6선 의원에 77세의 노객이다. 지금 모습이 쓸쓸해 보이기보다 이제 축축해 보인다.


저축은행이 어떤 사람들이 주 고객이었나. 부끄럽다. 4년 전 18대 국회의원 때 그만두라고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 상왕으로 대군으로 국가의 자문위원으로 물러났으면 오늘의 이 국가적 부끄러움이나 가문의 위신과 개인의 쪽팔림은 없었지.
전경환, 노건평씨도 대통령의 형으로 같이 옥살이를 치루었다. 훌륭하지 못한 형님들 공히 이번 이상득 형님과 함께 이 나라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긴 상왕들이다. 꼴진(?) 푼돈 그까짓 몇 억에 뇌물의 그림자를 피하지 못하고 갇혀버린 슬픈 현상이다.


오직하면 김찬경(구속) 저축은행장이 형님을 통해야 한다며 형님께서 상왕이 되시면 공기업이 민영화가 되는 곳에 이 동생을 좀 밀어주세요 했겠나. 이 말은 곧 어떤 공기업이 민영화가 거론되면 먼저 은밀하게 정보를 달라는 의미가 아니겠나.


이 양반 어지간히 미래를 꿰뚫는 천리안을 갖고 있나봐. 그렇기에 상왕이 수갑차기 전에 튈려고 밀항을 시도한 것이지. 허긴 한 예로 조그만 시나 군, 읍, 면에서 돈 좀 있는 약삭빠른 아저씨가 관의 도시계획 담당자와 친밀함이 두터워 어느 지역 어느 곳이 가장 빠르게 4차선 또는 마을 안길이 곧 뚫리니 그 쪽 코너 그 건물 또는 그 땅이 괜찮지 않겠나 은근히 정보를 흘려주고 주워 담는 일도 안 있었겠나.


인생은 구름이요 흘러가는 물이요 바람이며 조각배다. 정권말기의 어수선한 바람이 늦가을처럼 을씨년스럽다. 대통령 곁에 15년간을 그림자처럼 함께 했던 청와대 제1부속실장 김희중씨가 저축은행 돈을 수수했다는 의혹과 함께 갑자기 공직의 옷을 벗었다. 평소 조용하고 신중했으며 자기관리에 철저했다고 한다. 그런데 글쎄 대해의 속이야 금방 알 수 있어도 한 뼘 사람의 속은 모른다고 했다. 믿을 사람 없다 일까.


정권말기의 위기나 부자연스러운 청와대의 분위기와는 반대로 연말로 가는 여의도의 정치판은 마음껏 뛰고 뜨겁게 달궈지며 막말이 오간다. 때로는 내전에 내전이다. 가관이 연일 연출된다.
경제는 내가 알 바 아니다일까. 국내외를 막론하고 경기는 침체하고 기상이변에 총제적으로 경제는 황색 점멸등에서 빨간불로 바뀌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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