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몇 명이 흔들어도 - 김대환 칼럼

영천시민신문기자 2012. 6. 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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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명이 흔들어도 - 김대환

법정스님.성철스님 꾸짖음 여기까지 들여

 

스님 보고 절에 가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 보고 절에 가는 것이지 뭐 그리고 몇 번 다니다 보면 또 그 절의 스님과 이번 절의 스님도 마음에 와 닿지 않으면 무거운 절보다 가벼운 내가 떠나면 그만이다는 생각도 속인이 가지는 불(佛)의 세계이다.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 찾으러 다니다 보면 내가 어느날 부처가 된다. 그리고 아직 숨겨있는 절간의 진주는 많다. 법정스님 과 성철스님처럼 유명세는 없어도 비슷하게 청빈하고 계율대로 걷는 스님이 얼마든지 산문 속에 계신다.
중 몇 명이 모여 심산유곡의 공기를 심하게 흐려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럴수가 하며 불쾌한 생각을 했다.
도솔천 수미산 남부제의 극락동산에서 세번째 봄을 맞이하신 법정스님과 열아홉번째 맞는 성철스님은 못난 것들이라며 희고 긴 눈썹을 움직이셨다. 그리고 이승의 1,000만 불자들에게 몇 명의 중을 보지 말고 부처님의 깊은 뜻대로 육바라밀(六波羅密)을 따르고 실천하라고 이르신다.
두 분 스님은 1700년 전 이 땅에 뿌리내린 부처님의 온화한 억겁의 세계를 종단 전체 승려 1만2,000여 명에게 초심의 세계에서 자신을 낮춘 하심(下心)으로 참회하라고 이른다. 그리고 법정스님은 무소유에 대해 더 깊히 마음 젖어 공부하고 계율에 따를 것을 주문하신다.


성철 스님도 말을 잇는다. 공부 좀 하라고 하시며 정신을 모아 책을 통해서 진리와 깨달음을 얻고 마음을 바르게 하고 행동을 옮기면 돈오(頓悟 : 한순간 철리(哲理)를 깨닫는 것)가 눈앞에 와 닿고 한꺼번에 깨닫는 돈오돈수(頓悟頓修)와 깨달아도 또 깨달아야 할 마음의 잔습이 남아있는 돈오점수(頓悟漸修)의 한량없는 불법의 깊이를 알라고 하신다.


진심어린 불자의 세계는 육바라밀의 삶과 생사의 고해에서 불심이 생활화되며 실천하는 생활인으로 가고 있음이다. 바라밀(paramita)은 산스크리트어인데 ‘구제’한다의 뜻으로 성취나 완성의 뜻으로도 쓰며 불자는 육바라밀을 생활화하려는 대승불교의 대표적 실천사상을 체험하며 자기를 녹이는 것이다.
반야심경의 후미에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의 주문은 한걸음 한걸음 전진의 뜻으로 깨닫고 목적지를 향하는 것이며 깨닫지 못하면 나아가지 못하며 보리심이 약하면 지혜의 눈이 멀어져 부처가 될 수 없음이다.


세상의 원리는 하나이다. 가방 큰 것 메고 학교에 가도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이 1등하며 2등은 1등만큼의 노력이 부족한 것이다. 예배당이나 절에 열심히 다닌다고 모두 같을 수는 없다. 문제는 노력하고 공부하는 ‘신앙심’이다. 신앙이 약하면 아무리 다녀도 구원받을 수 없고 신과 멀어질 수 밖에….
부처님은 이 땅의 인류의 공존평화와 행복을 사부대중(四剖大衆 : 불교 교단을 구성하는 네 무리로 출가의 비구(比丘)와 비구니(比丘尼), 재가의 남자와 여자)에게 고루 나누어 주기 위하여 설산과 저잣거를 오가며 고행의 연속 속에 길을 열었다.


만약에 재가의 처사나 보살이 깨달음을 크게 얻어 억겁의 불심의 눈이 떳다해도 부처님이 될 수는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천상천하 유아독존하신 분이다. 다만 마음이 밝고 편하며 행복하고 물질적 부자가 부럽지 않다는 느낌이 왔다면 그 수행자는 이미 부처가 된 것이다.
암자와 사찰로 가는 보리심이 일주문을 통과하는 그순간 불자는 부처님으로부터 성불하여 부처가 되어 자기를 낮추어 세속의 108번뇌를 소멸하고자 부처님에게 절을 올리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길이 있고 부모로부터 타고 난 명(命)이 있다. 몇 명의 중이 놀아나고 종단이 훼손되었다 해서 불교가 넘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종교를 걱정하는 것은 사실이다.
차제에 첨언한다면 종북좌파 소수가 도랑물을 흐려도 대부분의 정치인은 노력하며 정가의 강물은 흐려지지 않는다.


부처님 오신 날 일부 절간에서 밝힌 연등의 크기가 돈의 액수에 따라 다름은 부처님이 시켰거나 불서와 불법엔 없는 일이다. 필자는 마음의 등을 밝혀 애독자의 가정에 나머지 액이 소멸되시길 기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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