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이슈

손진담 박사, 국역 남계실기 출간

영천시민신문기자 2021. 10. 13. 17:00
반응형

임진왜란 당시 창의해 봉기한 남계공(南溪公) 손응현(孫應睍) 선생의 생애를 추모한 문집이 국역판으로 발간됐다. 이번 발간은 ‘국역 남계실기(南溪實記) 간행위원회’ 대표이며 수필가인 지역출신 손진담 박사가 오늘의문학사를 통해 ‘국역 남계실기’ 란 제목으로 출간했다.
‘남계실기’는 경북도 영천시의 고천서원(古川書院)에 배향된 십현(十賢) 중 남계공(南溪公) 손응현(孫應睍) 선생의 생애와 임진왜란에서 창의해 봉기한 활동 사를 기록하고 그 행적을 칭송 추모하는 글을 모은 문집이다.


● 손진담 박사 발간사
새천년이 돼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2010년에 “사단법인 임진란 정신문화선양회”가 발족했다. 후원단체로 “남계공 손응현 선생 후원회”가 발족됐다. 2017년 임진란 7주갑(周甲)을 기념해 선양회에서 발간한 임진란 위훈록에는 ‘영천의 충렬 지사 남계공 손응현 선생’이란 제목으로 남계공의 공적 사항과 기타 자료로 발간된 서책이 ‘남계실기’인 바 보다 쉽게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염원에서 국역(한글 번역)을 하게 됐다.
‘남계실기’의 한글번역은 더욱 상세한 내용을 보다 쉽게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염원에서 시작됐다. 2019년 경주손씨 남계공 종중회의를 통해 번역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이에 부응코자 ‘남계공 손응현 선생 후원회’ 부설 ‘국역 남계실기 실행위원회’가 주관해 번역작업을 추진했다. 2020년 성균관 유도회 대구본부 조경욱 부회장과 종중회원인 손무익 한문학자의 도움으로 일차 번역은 순조롭게 진행됐으나 차세대를 위한 국역이니만큼 현대어에 맞는 교정은 그다지 쉽지 않았다.


● 제33대 성균관 관장 손진우의 ‘축간사’
남계 손응현 공은 신라 효자 손순의 후손으로 경주손씨 명문가에서 태어난 선비 집안의 후예다. 남계공은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당한 임진왜란 당시 29세로서 오로지 구국의 일념으로 창의 정용군의 일원이 돼 왜적 척결에 앞장섰다.
“군주가 욕되게 되면, 신하는 죽어야 마땅하니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면서 어린 아들과 젊은 부인을 남겨두고 비장하게 의병에 가담했다. 그는 임진년 7월 하순 영천성을 수복하고 8월 초 자인 전투에 참가해 큰 승리를 거두었으나 연이은 경주성 탈환전에는 중과부적으로 영천의 많은 사대부 출신 의병들과 함께 한날(음 8월 21일) 한시에 경주 서천에서 장렬히 산화하셨다. 당시 조정에서는 이들의 공적을 기려 사후 벼슬을 내렸는데 손공은 봉훈랑 의빈부도사의 관직을 수여했다. 이후 경상도 유생들의 상소로 세워진 영천의 고천서원 순국사에는 남계공을 비롯한 10명의 충렬지사가 배향되고 있다. ‘충현록’에 영천 10현의 행적이 실려 있다.

 

손진담 박사, 남계실기를 출간했다

 

● 남양 홍기섭 ‘남계실기 서’ 에서 가려 뽑은 글
응현공은 산림의 선비로서 채지로 받은 땅 서라벌 계림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으니 아! 그 거룩하고 위대함이시여! 선조 임진왜란 시 공의 나이는 겨우 29세에 불과했으니 오호라!
나라의 운명은 나무도 어려움이 많고 섬나라 오랑캐(왜적)들이 심히 노략질하면서 강토 천리에 화적질하니 삼경(큰 고을 세 곳)이 모두 함락하자 강토를 지키는 변진(변방을 지키기 위해군대를 주둔하는 곳)을 모두 버리고 살기 위해 달아나고 도망하니 어느 한 병사도 앞서 나서는 자가 없었더라.
애달프다. 후손이 떨치지 못해 전래한 언행이나 실록이 없어지고 사라졌으니 마음이 답답하고 위태로운 일이니, 이것이 어찌 오늘에 남겨진 후손의 통한이 아니리요. 능히 후세의 열사에 가동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러나 송나라 문충공 구양수는 덕행과 공업과 문장을 영원히 썩지 않는 세 가지 삼불후(三不朽)라 하고, 이어서 말하기를 몸을 수신하고, 비록 말씀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나 일을 베풀라고 했다. 가히 오늘 공의 덕행이 이미 수신해 공업이 또한 일에 다 베풀어져 있으며, 충절이 또한 이와 같으니 찬란하게 빛이 나도다.

 

 

● 방예 손후익 찬에서 가려 뽑은 글
자인의 적을 섬멸하고 경주의 전투에 나아가셨는데 좌도를 맡은 권응수 장군이 적을 가볍게 보고 실수한 것과 병사 박진이 절제를 소홀히 해 흥해와 연일의 고을 수령들이 먼저 달아나 대군이 마침내 무너지니 공과 같은 고향의 17인 의사에게 맹세하며 이르시기를 “오늘의 전투는 전진만 있고 후퇴는 없다” 하시고 힘을 다해 싸우시다가 그곳에서 돌아가셨다.
시신이 훼손돼 거두지 못하고 남기신 옷으로 청송군 현서 문천리 세봉 장등에 장사 지내고 제사를 모셨다. 같은 날 순절하신 분은 김대해,최인제, 정의번, 김연, 이득린, 이호인, 이영근, 이순복, 이지암, 류복흥, 전억주, 이득룡, 한득의, 전홍채, 이일장, 류원길, 이정분 등이다.
국역 남계실기에는 발간사, 축간사를 시작으로 남계실기 제1권, 남계실기 제2권, 제3권을 통해 당시 세계도, 연보, 고천서원 사적, 충렬지사 손응현 선생의 일대기를 소개해 놓고 있다.


편찬자 손진담 박사는 1944년 고경면 출신으로 영천중, 경북사대부고, 경북대 지질학과를 졸업하고 영국레딩대 대학원을 거쳐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부산대학교 초빙교수, KISTI 전문연구위원 겸 국립중앙과학관 큐레이터로 활약한 바 있다.
퇴직 후에는 과학수필가로 등단하여 자전적에세이 <학바우스토리>가 있으며, 가족으로 아내 이조향씨 사이에 2남1녀가 있다.
현재는 고경력 과학기술인으로 구성된 대덕과우회장과 임진란 정신문화 선양회 재정운영위원으로 활동중이다.
저서 및 편찬으로는 학바우스토리(2018), 국역송파유집(2019), 유거운(2019), 국역남계실기(2021) 등이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