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천 시

송곡서원, 1966년 원촌리에서 애련리로 옮겨 복원

영천시민신문기자 2018. 10. 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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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곡서원, 1966년 원촌리에서 애련리로 옮겨 복원
짧은 역사만 남아 있어 문화재 등재에 어려움



송곡서원은 청통면 애련리에 있다.
애련리는 은해사 입구(청통파출소 자리) 사거리에서 은해사 방향으로 들어가가 바로 우측으로 들어가는 농로가 나온다. 크고 작은 공장들도 이 길에 있다.
농로를 따라 가면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안쪽 농로변에 바로 위치해 있다.
청통사거리에서 약 1.8km를 들어가면 송곡서원이 나온다.

송곡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모두 훼철됐다.


그러다 1966년 원촌리에 있던 자리를 이곳으로 옮겨와 새로 지었다. 그래서 복원 후 짧은 역사만 남아 있어 지방문화재 등재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송곡서원 입구



원촌리 이름은 송곡서원(松谷書院)이 있었기에 생긴 이름이다. 태재 류방선선생을 제향하는 서원이다. 선생은 집현전 학사로 임명되어 세종대왕과 서로 질의로서 왕복하고 스승의 예우로서 대우하게 되니 선비의 영예스러운 일이었다. 사계같은 문학의 영수와, 단종때 세조의 왕위찬탈을 반대하다가 금성대군과 함께 처형당하여 순절하신 대전 이보흠 같은 분을 문하생으로 두고 있었다. 1702년에 폐비를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다가 대원군께 훼철되고 광복17년 애련리로 복원하였다.(영천시지명유래참고)


유방선[1388~1443]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본관 서산, 자 자계, 호 태재다. 학문에 정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문에도 능하였고, 산수화도 잘 그렸다. 그의 문하에서 서거정·이보흠 등 이름 있는 학자가 배출되었다. 문집에 『태재집』이 있다.


송곡서원 내를 설명하는 정선득 계포리 이장



복원한 송곡서원의 경내 건물로는 3칸의 사우, 신문, 동서 협문, 강당, 서재, 대문 등이 있다. 사우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집으로 유방선과 이보흠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된 평면을 가지고 있으며, 겹처마 팔작지붕집이다. 서재는 경의재라 부르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송곡서원은 매년 3월 상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재산으로는 밭 600평 등이 있다. 강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학문의 토론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서재는 유생들이 공부하면서 거처하는 곳인데 현재는 향례 때 제수를 마련하여 두기도 한다.


상량문중 하나



송곡서원에 대해 애련리와 경계를 이루는 계포리 정선득 이장은 “송곡서원은 원래 원촌리에 있었다. 원촌리는 서원이 있다고 해서 원촌리다. 서원철폐령 이후 사라졌다. 66년도에 건립하면서 이곳으로 이전했다. 현재는 유쌍현씨 등이 관리하고 있다.”면서 “오래된 서원 건물이 아니므로 후손들이 지방 문화재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쉽게 결정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상량문


송곡서원내부에는 건립한지 50년이 지났지만 당시 상량문은 그대로 남았다. 상량문에는 ‘송곡서원묘자상량문’ ‘중건상량문’ ‘송곡서원 중건기’ 등이 상세히 기록, 현판으로 남아있으며, 현판은 3개가 있다.
정선득 시민기자, 멘토 김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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