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천 시

은해사 정상에 위치한 석탑… 통일신라시대 양식으로 제작

영천시민신문기자 2018. 9. 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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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해사 정상에 위치한 석탑… 통일신라시대 양식으로 제작
경북유형문화재 332호 중암암 삼층석탑



불교에서 석탑의 기능은 원래 부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한 무덤이다. 즉, 불교의 신앙물로 건축적 기법을 사용해서 사리를 모신 집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불탑(석탑)은 영천지역의 다섯 곳에서 보인다. 금호 신월동 신흥사 삼층석탑(보물 제465호), 신녕면 화남리 한광사 서 삼층석탑(보물 제675호), 한광사 동 삼층석탑(비지정), 화북면 정각리 삼층석탑(경북유형문화재 제269호), 청통면 거조암 삼층석탑(문화재자료 제104호), 중암암 삼층석탑(경북유형문화재 제332호) 등이다.


그 가운데 보물은 2점이고 유형문화재 2점, 문화재자료 1점인데 이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석탑은 신흥사 삼층석탑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특이한 점은 은해사 권역보다 그 권역을 벗어난 곳에서 석탑이 많이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지난주 은해사 영역의 암자 중에 가장 정상부에 위치한 중암암(中岩庵)에 찾아갔다. 중암암은 청통면 치일리에 소재하며 은해사 내 암자로, 불교신자들 사이에서는 일명 ‘돌구멍절’이라 불리고 있다. 그것은 암자로 가는 길이 커다란 바위틈을 지나야 하기에 이름 지어진 것이라 한다. 암자에서 정상을 향해 약 50m쯤 올라가면 삼층석탑이 자리잡고 있다.



찾아간 석탑은 보존처리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보호망과 철구조물로 가려져 있는 상태였고 7월 9일부터 10월 16일까지 공사가 진행된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대략 3m 정도 되어 보이는 석탑의 모습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삼층석탑이다. 잘 다듬은 길고 넓은 평평한 돌 네 개를 결합해서 바닥돌로 깔고 그 위에 이층으로 다시 돌을 놓아 단단히 기초를 다진 다음, 3층의 탑을 세웠다. 지붕처럼 생긴 지붕돌의 개수가 그 탑의 층수를 의미한다. 지붕돌의 모습은 아주 부드러운 경사면(낙수면)으로 빗물이 잘 떨어지도록 만들어져 있고 전체적인 탑의 형태는 작지만 기단부와 3층 탑신의 전체적인 균형과 비례는 매우 아름답다. 문화재청 조사에 의하면, 고려초기의 작품이라 기록하고 있으나 전체적인 모습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어 제작시기에 관해서는 의문이 든다.



영천역사문화박물관 지봉스님은 “중암암 삼층석탑의 전체적인 규모는 작지만 기단부와 삼층탑신의 전체적인 체감 각도에서 보여주는 체감율이 보물 제247호인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과 매우 유사해 단아한 미감을 두 곳에서 동시에 볼 수 있다.”라며 “탑의 양식을 비교해보면, 합천 청량사 삼층석탑과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과 단양 향산리 삼층석탑 까지 기단부의 결부방식과 그 형식이 9세기 말 소형 탑의 전형양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탑이기도 하다.”고 상세히 설명했다.


중암암 삼층석탑은 탑 옆에 세로형 돌기둥 두 개가 있는데 가장 가까이 있는 작은 돌기둥 위에 볼록 나온 부분으로 보아 무엇을 고정시키는 장치로 보였고 바깥쪽 큰 돌기둥은 네모난 기둥모양이며 상부에 네 방향으로 뚫려있어 석등의 기능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세히 살펴보니 여러 가지 수수께끼가 숨어져 있는 듯했다. 석탑보다 두 개의 돌기둥이 원래 어떤 역할을 했을까 하는 의문에 더 무게가 실렸다.



석탑에서 20여m 떨어진 곳에는 중암암을 비롯해 극락굴, 삼인암, 건들바위, 만년송, 장군수 등이 있고 각각의 재미있는 설화를 전하고 있다. 중암암의 주지인 지안 스님은 “삼층석탑의 깨진 흔적은 아주 오래전 일제시기 쯤 도굴되었던 것이라 추정하고 있어요. 오래된 신도들이 앞서 탑을 보수할 때 동판에 이름을 적어 복장유물처럼 탑 내부에 집어넣었다고도 해서 아주 흥미롭습니다.”라 첨언했다.
박순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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