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124년 전 영천로또복권 ‘만인계(萬人契)’를 아십니까
하기태 영천역사문화연구원 원장
퇴직과 동시에 영천역사문화연구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우리지역의 문화재 소장 현황과 청년창업관련 공모사업에 관심을 두고 재점검해보며 연구하던 가운데 흥미로운 물건을 찾게 됐다. 바로 100년 전 신녕면에서 발행한 복권 ‘신녕 만인계’이다. 만인계는 계원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었던 전통복권이다.
예전에도 주로 도로건설이나 필요한 공공사업비를 마련하기 위한 명목과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국채보상운동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는 설이 있지만 결국은 주민들의 화합을 유도하고 마을의 공공자금을 충당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데 가장 무게가 실린다.
오래전에도 영천지역에서 현재의 복권형식을 빌어 ‘만인계’라는 이름으로 발행되었다. ‘만인계’를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1899년부터 1904년 사이에 일정한 번호를 붙인 표를 100명(작백계) 혹은 1,000명(천인계), 1만 명(만인계) 등의 단위로 계를 팔고 추첨을 통해 계원들에게 총매출액의 일부분을 복채금으로 돌려주는 방식으로 열렸다고 한다.
하기태 영천역사문화연구원장
최근 경남 창원지역에서는 구한말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발행했던 전통복권 만인계를 복원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창원에서는 구한말 당시 만인계 행사가 크게 열렸던 창원 남산공원에서 ‘창원 만인계’를 시연하기도 했다. 수시로 열리기도 했지만 정례적으로 가장 규모가 크게 열린 시기는 추석 전후였기에 그 시기에 맞춰 만인계 복원을 위한 시연을 개최한 듯하다. 그보다 앞서, 지난 8월 열린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에서도 축제의 한 프로젝트로 ‘1900년 목포만인계 재현놀이’를 실시해 큰 호응을 얻었는데 목포에서는 2016년에 축제의 개막식에서 처음 선보인 만인계로 대 히트를 쳤기 때문에 올해 놀이프로젝트로 만들었다고 한다.
목포만인계에 대한 기록을 보면, ‘전라도 무인항(목포항)에서 박창규, 진서윤 두 사람이 계표를 장당 엽전 5냥씩 판매하여 추첨하는 날 1300냥을 도로수리비에 충당한다고 하고 만인계를 설치하였다.’(제국신문 1900년 10월 24일자)는 기록이 남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각 지자체에서 만인계를 부활시키는 것은 지역 공동체 문화를 계승하면서 죽어가는 원도심의 상권과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노력하는 모습이라 여겨진다. 예를 들면 지역축제에 참가할 시민들에게 계표복권(만인계)를 장당 1000원씩 판매(사전 및 현장구입가능)하고 축제기간에 일정 시간과 특설무대를 만들어 추첨을 하는 거다. 상금은 1등부터 4등까지 차등해 지역 상품권을 지급해야 하고 상금 이외의 전액은 그 지역 내 거주하는 불우이웃이나 복지시설 등에 생필품을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진행해보는 것이다. 1900년도 전주군에서 발행한 만인계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 선조들의 경제적 어려움 극복을 위한 자구책 마련의 지혜가 놀랍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복권의 기원은 근대 이전의 한국사회에서 크게 발달한 일종의 민간협동체인 ‘계’에서 찾을 수 있다. 어학사전에 보면, ‘만인계는 천 사람 이상의 계원을 모아 각각 돈을 걸게 하고 계(契) 알을 흔들어 뽑아서 등수에 따라 돈을 태우는 계’라고 정의 되어 있기에 사행성을 걱정하는 이들도 없지 않겠지만 그 목적과 방식을 제대로 갖추어 재현한다면 지역민들에게 전통을 계승하는 놀이라는 개념과 더불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는 개념을 잘 조화시킨다면 플러스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아이템이 되지 않을까라는 판단이다. 영천의 원도심을 재생하고 청년들이 고향에 정착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아이템을 심도 있게 연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복권 형태의 만인계 가운데서 ‘영천신녕 만인계’는 1893년 계사년에 발권된 것으로 가장 이른 것으로 보이고 있어 더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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