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천 시

영천학사가 만들어준 소중한 인연과 추억들 고스란히 마음에 남아

영천시민신문기자 2016. 8. 12.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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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영천학사 출신 새내기 사회인 투고



 영천학사가 만들어준 소중한 인연과 추억들 고스란히 마음에 남아



영천학사 생활은 나의 자랑거리였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 수백 통의 메일. 급하다고 애원하는 업무들을 간신히 쳐내고 나면 하루는 금방이다. “나 없이 회사가 굴러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떠올려 봤을 것이다. 입사 4년차. 어느새 진급을 하여 대리가 되었고 어엿한 직장인으로 부족함 없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다. 내 고향 영천에서 서울로 상경한 지 어언 11년. 나는 홀로 섰다.


하지만 이방인이 서울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고달픈 일이다. 정신없는 하루를 마치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 퇴근길엔 열정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는다. 혼자 사는 집으로 들어서면 반겨주는 부모님도, 따뜻한 온기도 부족하여 알맹이가 채워지지 않는다. 알맹이가 단단했던, 그 시절 내가 머물렀던 공간을 떠올려 본다.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 때, 나는 영천학사에 머물렀다.


매년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률을 기록하고, 경쟁은 날로 치열해져 간다. 사회인이 되기 위해 학생들은 취업 시즌 수많은 입사원서를 쓴다. 나 또한 그 과정을 겪고 나서 직장인이 되었다. 그러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내가 쓴 자기소개서엔 항상 자랑스럽게 영천학사에서 살았던 내용이 적혀 있었다. 타인들과 함께 지내며 형성된 적응력, 친화력 등이 나의 장점이라는 것인데, 그만큼 영천학사는 나에겐 하나의 자랑거리이자 나를 소개할 땐 항상 따라다니던 수식어였다.


                                               추연백 매일유업 근무



스무 살 갓 대학교에 입학하였을 땐 아직 영천학사가 개관 전이었다.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영천학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고, 전역 후 복학할 땐 학사에 입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터무니없이 높은 서울의 월세, 등록금, 생활비를 큰 폭으로 절감할 수 있었기에 부모님은 안도하셨고 나는 그것만으로도 큰 효도라 여겼다. 적응은 순간이었다. 낯선 동네였던 신설동은 어느새 나에게 제 2의 고향이 되었다. 넓은 창문으로 내리쬐던 햇볕, 깨끗하게 유지되던 복도, 항상 쌀밥이 가득 차 있어 따스한 김을 내뿜던 밥솥, 영천학사 인근의 편리한 시설들. 

 
1호선 지하철역이 바로 앞이었기에 통학하기에 용이했고, 맞은편에 위치한 동대문도서관에서는 보고 싶은 책을 언제든지 빌릴 수 있었다. 또한 저녁에는 청계천에서 풀벌레 소리를 듣곤 했다. 주말에는 바로 앞 풍물시장에서 진기한 물건들에 호기심을 가졌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 학사 룸메이트와 밤새 수다를 떨며 당시의 고민거리를 공유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소한 고민이고 괜한 걱정이었지만 경험의 한계는 또래의 학사 생들로 인해 극복되어 갔다. 선·후배들과 함께 대명리조트로 가서 즐거운 MT를 보냈던 것도 학사에서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다.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동질감, 외로울 때 기댈 수 있는 든든함이 있었기에 우리들은 끈끈했다. 그리고 때론 엄격했지만 학생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고자 항상 진심으로 대하셨던 사감선생님들이 계셨다. 지금은 모든 것이 추억이 되어 버렸지만 언제나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취업을 위한 즐겁고도 고달픈 대학생활이었지만 영천학사에서의 생활 덕분에 큰 걱정 없이 원하는 것들을 하며 지낼 수 있었다. 따뜻한 둥지에서 그렇게 2년을 보냈고 졸업과 동시에 학사를 떠난 그 해 봄.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은 바쁘고 치열하기에 고향 영천에 두 달에 한 번 방문하기조차 쉽지가 않다. 그러다보니 가끔 동대문 인근으로 외근을 나가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학사에서 머물렀던 그 시절 흔적을 쫓는다. 먼발치에서 건물만 보아도 따스하게 느껴지는 추억들은 하루를 버티는 영양분이 된다. 

 
작년 겨울, 학사에서 함께 지냈던 룸메이트의 결혼식 사회를 보게 되어 인사차 함께 학사를 방문했다. 학사는 변함이 없었고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던 사감선생님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내가 머물렀던 그 곳에, 몇 년 전의 나를 닮은 새로운 친구들이 저마다의 고민을 하며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처럼 영천학사가 만들어준 소중한 인연들과 추억들은 모두 서울에, 그리고 내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회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 알맹이가 가득 차오름을 느낀다. 서울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가며 오늘 하루는 비록 껍데기만 남았을지라도 내일은 다시 알이 들어찬 알맹이가 되어 나 자신을 단단히 숙성시킬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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