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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느리 마을, 6.25때 탄약창 들어서 이젠 군사보호구역 해제로 주목
쇠느리 마을, 영천역 뒤쪽 탄약창 있는 동네다.
남부동 3통으로 지금은 행정구역이 변경됐지만 과거 금노동 시절 쇠느리 마을로 유명했다.
금노동(1동에서 4동까지) 자체가 쇠 금자, 늙은 노자를 쓴다. 쇠가 늙어 간다는 말이다. 이는 탄약창을 두고 한 말인데, 군 무기가 오래 동안 눌러 앉아 있다는 의미와도 같다.
30살에 이곳에 들어온 할아버지(88)는 “58년 동안 살고 있다. 그 전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는 않았다. 일제 강점기도 약 70세대 정도가 살았다. 그러나 6.25 후 부대 탄약창이 자리하자 점차 사람들이 떠났다”면서 “전쟁 발발 후 미군들이 내려와 논들에 포탄을 그대로 내려놓고 사용했다. 땅 주인 허락 없이 포탄을 내려놓고 마구 사용했다. 처음엔 보상 없이 마구 사용했으나 나중에 보상을 적게나마 받았다. 그러나 보상받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어려운 사람들이 더 어려워졌다. 이 바람에 이 동네가 부자 동네 되지 못했다.”고 과거를 설명했다.
쇠느리 마을인 남부동 3통 마을회관앞에서 주민들의 기념사진, 뒤쪽 좌측이 옥영준 통장
탄약창을 가까이 하고 생활하다 보니 주민들의 스스로 불조심을 하곤 했다. 자체 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기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없어져 이제는 한 사람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점은 좋은 점으로 볼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대부분 탄약창으로 인해 생활에 큰 불편을 겪었다. 명찰을 달아야 통행을 할 수 있는 것, 주민등록증을 제시해야 탄약창 안에서 농사를 할 수 있는 것 등 군사보호구역으로 불편한 점이 한 둘 아니었다.
불편함이 오랫동안 지속됐지만 최근엔 일부지역이 군사보호구역으로 해제,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는 등 외지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곳으로 부상했다. 이 덕에 주민들도 좋아하고 있다.
쇠느리 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서 취재에 협조하고 있다
옥영준 통장(영천시 산악연합회장)은 “현재 부동산 거래는 없으나 가격은 많이 상승했다. 군사시설 해제지역 부지는 과거 땅 주인에 먼저 돌려 줘야 한다. 주민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 국방부에서도 이점을 잘 알았으면 한다”면서 “우리 마을은 70가구에 180명의 주민들의 살고 있다. 약 6년 전 버스가 들어와 생활의 불편한 점도 조금은 나아졌다. 마을 자랑은 담배 피우는 사람 없고, 술파는 가게 없고, 건강한 사람이 많은 장수 동네다.”고 쇠느리 마을을 자랑했다.
또한 동네에서는 대보름 윷놀이대회, 봄가을 온천관광 등 매년 빠지지 않고 추진해 오고 있는데, 행사는 동네 경비로 다 치른다. 이는 동네 기금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동네기금 5천만 원은 항상 통장에 있다고 한다. 행사 경비는 개인들이 찬조하고 기금 이자에서 충당하는 방법을 활용하기에 절대 적자나 모자라는 법은 없다고 한다.
쇠느리마을 상징석
이렇듯 마을이 잘 돌아가고 장수마을로 자리하게 된 것은 마을의 지도자들이 맡은 일을 잘 처리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고 동네 어른들은 칭찬했다.
그리고 건강보험 공단 혜택 없이(병원에 가지 않는 것) 열심히 건강하게 생활하는 김말철 할머니(85)가 건강보험 공단 상을 받았다는 것 또한 자랑이다고 한다.
마을 대표들은 방상호 경로회장(77)을 비롯해 김광수 경로당 총무(68) 옥영준 통장(63) 윤용하 새마을지도자(54), 이순희 새마을 부녀회장(61).
출향인사로는 현기한 국정원, 이용건 검찰청 수사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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