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천 시

영천골목시장의 마지막 겨울

영천시민신문기자 2013. 12. 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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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천골목시장의 마지막 겨울

                영천시장은 경상도 3대 시장 중 하나

                보물 521호 숭렬당 일대 정비사업으로

 

 

사통팔달의 교통요지인 영천의 자랑거리 중 하나가 바로 ‘영천 큰 장’이다. 영천 큰 장은 대구의 약령시장, 안동시장과 함께 경상도의 3대 시장이라고 전해진다. 영천은 부산과 경주, 경주에서 한양에 이르는 중요지점으로 당시 하루 만에 물품 공급이 가능한 곳이 바로 영천 장이었다. 동해안 일대에서 수급되는 어류는 영천시장에서 군위, 의성, 안동, 칠곡, 선산, 달성, 경산으로 출하되었고 이들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면직품, 약초 등은 동해안으로 팔려나갔다.
영천시장은 여러 차례 옮겨졌는데 조선 말엽에는 금호강에 접하는 완산동 구릉지였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일제시대에 들어 문화원 맞은편과 염매시장, 향교 앞쪽 골목시장으로 이동했고 1955년 장소가 좁다는 이유로 현 신시장으로 옮겨졌다.

 

- 사라지는 골목시장

 

1955년 이전부터, 이후 신시장이 생기고도 한참동안 염매시장 일대와 골목시장이 함께 융성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염매시장은 그 흔적을 온전히 감추었고 골목시장이 근근이 그 명맥을 이어오다 이제 그마저도 역사의 흔적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문화재인 숭렬당으로 인해 시에서 그 일대를 매입해 정비사업을 진행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상권이 몰락한 이후에도 상가의 형태는 그대로 남아 지난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던 골목시장. 간판도 없는 야채상가와 참기름집이 나름의 전략으로 성업을 했으나 대부분의 상가는 문을 닫은 지 오래다.

 

정감어린 골목시장 풍경

 

- 평생을 골목시장에서 보낸 사람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이사 와서 평생을 골목시장에서 보냈다던 이남조(77) 할머니와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제법 큰 야채시장을 하고 있는  박옥자(63) 할머니. 생선 가게를 하다가 그만두고 지금은 그 자리에 3층 건물을 올려 세를 놓는다는 전분선(74) 할머니 등 골목시장 터줏대감 3인방이 겨울 햇살을 핑계삼아 둘러 앉아 옛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우리 엄마가 화산에서 영천에 나오니 영 해먹을게 없었던 거야. 그런데 영천극장 앞에 어떤 아주머니가 앉아서 콩나물을 팔더래. 그래 그 옆에서 생선을 갖다 팔아봤는데 그게 다 팔린 거야. 다음날 조금 더 가져와서 팔고 그 다음날도 계속 팔았지. 그런데 얼마안되서 그 옆으로 사람들이 난생이(냉이)를 캐와서 팔기도 하고 과일을 가져와 팔기도 하고… 앉고 앉고 해서 고마 장이 된 거지. 그러다 차 다니는 곳이 비좁다고 비키라카이 저기 오토바이 서있는 저 집에 울 엄마가 세를 얻게 된거야. 지금 있는 이집은 당시 그냥 민가였는데 주변에 장사가 잘 되니까 주인이 상가를 지어서 세를 놓았어. 한 집을 작게 나눠서 세를 놨는데 이 작은 공간(30㎡(약 10평) 정도)에 우리 엄마가 생선 집을 하고 옆집에 건어물집 쌀집 메리야스집 뻥튀기집 국시집이 있었지. 결혼을 하고 내가 장사를 이어받아서 했는데 우리 큰 딸을 나아서 첫돌도 안된 걸 안고와서 (울먹) 추운데 벌어먹고 살겠다고… (울먹) 그렇게 살았어. 그렇게 여기서 애들 다 낳고 키우고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보내고 그리고 여태까지 살지. 청춘을 여기에 다 바친 거야.”

상인들이 양지쪽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영천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던 5~60년 전에는 여기가 중앙 통이었어. 꽃동산을 위시해서 군인가족들이 이 근처에 세를 많이 살았거든. 그때는 아파트가 없었으니까. 그 새댁들이 매일 이곳으로 장을 보러 나왔어. 여긴 오일장이 아니고 매일 장이 열렸거든. 이제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으니… 마치 무너진 사랑 탑처럼 된거지. 저 집에서 생선가게도 하고 찌짐장사도 하고 술파는 집도 고추방앗간도 쌀전도 했어. 한 가게에 수십 사람이 지나간거야. 십 몇년 전에 내가 저기서 통닭집을 했거든. 저기 저 집은 술도가였어. 그런데 맥주가 나오고 장사도 안되는데다 도로가 나면서 집이 뜯기게 되니 술도가도 그만두게 된 거지.”

 

- 추억어린 골목시장의 마지막 겨울

 

명산참기름은 상가부지가 숭열당으로 수용돼 바로 앞집으로 점포를 옮긴, 골목시장 내에서는 꽤 장사가 잘되는 집이다. 20년 동안 참기름집을 운영하던 주인  윤명순(53)씨가 고춧가루를 빻던 손을 잠시 놓고 골목시장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제가 시집올 때는 점포 3개를 다 세놨었는데 상권이 죽으니 세 들어올 사람이 없었죠. 그때부터 제가 직접 장사를 시작했어요. 주변에 할머니들도 근근이 장사를 하긴 했는데 사람이 안다니니 개점 휴업 상태였던거죠. 저는 단골과 택배 위주로 장사를 해서인지 상권과 상관없이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요. 20년 전만해도 이곳 땅값이 3.3㎡(1평)당 300만원을 웃돌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100만원도 안되니… 여긴 세월이 거꾸로 가는 것 같아요.”

 

도시계획에 의해 조금씩 주변이 변하고 있다


사는 사람은 불편하기도 했겠지만 고향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정감 있고 추억어린 장소였던 골목시장. 이곳에서 자라고 결혼하고 늙어가며 평생을 삶의 터전으로 의지하며 살았을 상인들의 애환이 곳곳에 서린 곳. 간판이 떨어지고 유리가 깨지고 나무문이 덜컹거리는 사이로 초겨울 흰눈이 내리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골목시장의 마지막 겨울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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