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문화 코드
김정식/담나누미 스토리텔링연구원장
저물어가는 하늘이 더 붉습니다. 금빛으로 출렁이는 들녘과 산자락을 온종일 데웠던 햇살 자국입니다. 낱낱이 청푸른 잎새 곧 세우던 여름을 저만큼 물리고 어느새 가을이 깊숙이 들어앉았습니다. 지인들은 주말 산행이 좋더라며 ‘산이 불덩어리가 되었더라!’ 고 산 자랑을 합니다. 산은 늘 그렇게 제 자리에 있지만 사람들은 봄은 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산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그때마다 마치 다른 산 이야기를 듣는 것 같습니다. 팔공산 단풍이야기로 꼬리를 무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불쑥 질문을 던집니다.
“영천의 ‘감성코드’는 뭐지?”
그가 말하는 감성코드란 사람들이 보고 들으면서 감동하는 어떤 대상물을 뜻하는 것이라 짐작됩니다. 빼어난 자연 경관이나 고색창연한 문화유산 혹은 특별한 스토리를 지닌 인물이나 설화 등이 있느냐는 질문인 둣합니다. 지역사회를 상징하는 감동체라고 말해도 되겠지요. 나는 즉답을 감추고 그의 질문을 곰곰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선뜻 대답할거리가 마땅하게 떠올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천포도라 말하기도 그렇고, ‘star(별)이다’ 고 내뱉기도 어쩐지 궁색하더라구요. 결국 나는 글쎄... 하고는 말끝을 흐리고 말았습니다.
청도가 고향인 그는 의기양양한 말투로 감와인이 국가잔치술로 진상(?) 된다는 둥 청도소싸움이 국제적인 축제라는 둥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듣다못해 나도 한마디, “영천 문화코드는 대마지...!” 했더니 누군가가 ‘영천 대말x...’하면서 크게 웃더군요. 그의 웃음 색깔이 무엇이든 나는 영천대마가 우리의 것임을 확인된 듯하여 싫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운주산 승마휴양장과 경마장 등은 미래세대들의 에듀테인먼트 공간이라고 응수했습니다.
영천은 다른 지역에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말과 깊은 역사를 지닌 고장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경부역로의 요충지인 신녕에 장수도 역참을 운영했습니다. 공공 정보통신(파발)과 물류이동에 사용된 말이 200여필이나 상주할 만큼 규모가 큰 말 터미널이었습니다. 또한 15세기 초부터 활발하게 전개된 한일외교 사절단, 조선통신사 행렬은 영천에 이르러 쉬었다 갔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긴 여정의 피로를 명원루(조양각)에서 푸는데 그 잔치(전별연)의 절정은 마상기예를 관람하는 것입니다. 소위 ‘영천마상재’는 사신행렬단과 지역주민들이 하나가 되어 즐긴 볼거리였지요. 숙련된 몸놀림으로 말 등과 배 밑을 자유자재로 노닌 마상재주는 일본 막부가 가장 좋아했던 유희거리였습니다.
조선 후기까지 약 20여회 정도 시행되었던 이 고난도의 마상재는 한류의 원조로 평가하여도 무난할 것입니다. 영천 말의 내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20세기 초 기차역이 완산동에 들어서면서 ‘말죽거리’가 생겨납니다. 당시 영천역은 동해 남부와 북부지방의 농산물을 유통하는 물류센터 역할을 했는데 수하물 하역장이 있던 역사주변과 완산동 신시장에 이르는 약 300m의 거리는 말 수레들이 장사진을 이룬 곳입니다. 수송수단이던 말들이 머물러 쉬면서 다음 일거리를 기다린 것이지요.
차츰 시장이 활성화 되어가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신개발 지역인 그곳을 ‘말죽거리’라 부르게 됩니다. 또 말과 연관된 설화도 있습니다. 통일신라 후기, 견훤의 경주 침공을 금강산성에서 격퇴하고 왕건의 건국을 도운 황보능장의 용마와 말무덤 등의 이야기는 우리고장의 자랑거리입니다. 모두 영천大馬문화의 맥을 이루어 온 근저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토양을 가지고 있는 우리 영천시민들은 오는 2016년에 열릴 세계적인 수준의 영천경마장이야말로 말 산업도시를 향한 창조적 비전을 실현해 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영천대마는 내생된(endogenous)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다른 지방의 말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고유성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역사와 현재를 아우르는 영천대마는 분명 타지역과 차별되는 문화 브랜드로 자리 잡아 나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제 우리들은 말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아울러 긍정적이고 고급스러운 ‘영천대마’ 문화를 축성해나가야 할 전략을 준비해야 합니다. 말 산업의 성공은 장기적으로 말 문화가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산업에서 얻어진 수혜를 문화라는 다른 방식으로 시민들에게 돌려줄 때 지역주민은 지역에서 발생하는 산업적인 비전을 지지하고 동의하게 될 것입니다. 산업과 문화의 두 바퀴가 동시에 구동되어야 한다는 의미지요. 유럽 등 선진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산업과 문화가 병행될 때 그 양자는 승수효과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고 나아가 산업이 아니라 문화로 하여금 지역민들이 자긍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 양자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균형감 있는 사회가 바로 잘 사는 사회, 시민이 행복해지는 사회가 아닐까요.
영천대마를 문화적으로 이해하는 시각은 각자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유하고 전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놀잇감 즉 산업매카니즘에서 문화적인 말이라는 다른 차원으로 조명하자는 것입니다. 말을 통해 문화자본재로 하는 연성적인 가치(softpower)를 발견하고 그것을 영천대마 문화 브랜드로 조형해 나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말 산업과 병행하여 품격 있는 대마문화 브랜드를 성장시켜 시민이 행복한 말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미래지향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합니다.
영천만의 고유한 말로 형상화 시키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고 공공디자인에 접목할 수 있는 대마상의 조형물이 요구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공예품으로, 뮤지컬로, 나아가 국제 마상재 축제도 열어봄직하고 또 대마문화를 지속적으로 연구개발해 나갈 전시문화 공간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시민들이 누려야 할 문화자산들인 동시에 말 산업의 촉진재로 환류될 것들입니다.
영천대마를 문화적으로 인식하려는 나에게 누군가가 다시 영천의 문화코드를 물어오면 그땐 주저하지 않고 ‘대마문화’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심미적 감흥과 생명기운을 불어넣어 줄 영천대마 문화가 활짝 꽃 피워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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