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천 시

보현산 댐 수몰민 이야기, 마지막 농사를 짓는 수몰민들

영천시민신문기자 2013. 11. 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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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현산댐 수몰민 이야기

               마지막 농사를 짓는 수몰민들

 

보현산댐의 건설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벌써 물에 잠겼어야 할 수몰지구는 철거된 몇몇 집을 제외하고는 아직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기는 하다. 이주단지의 공사 연장으로 담수시기가 늦춰졌기 때문이다.
현재 수몰지구에 남은 주민은 이주단지로의 입주를 희망한 23세대에 불과하다. 이들은 이웃이 떠난 텅빈 마을을 지키며, 고향땅에서의 마지막 농사를 갈무리하고 있다. 철거된 집들 사이로 콩이며, 들깨를 수확하고 있는 주민들의 어깨에는 함께 살던 이웃을 떠나보낸 이들의 쓸쓸함이 깃들어 있다.

물에 잠기는 입석 용소 마을

입석리 마을 입구 소나무

 

입석리는 면적이 8.05㎢이며 인구는 약 56가구 117명이 살았다고 한다. 용소리는 면적이 4.01㎢로 인구는 약 57가구 106명이 살았다고 한다. 입석리는 본동인 지픈기미, 배나무정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수몰되는 곳은 입석리와 지픈기미 일부이다.
입석리와 용소리에는 각각 1977년과 1976년에 지은 오래된 회관이 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당시를 보여주는 듯한 외형으로 스레트 지붕과 벽돌시멘트로 마무리한 단조롭고 수수한 창고형 건물이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가난을 벗어날지, 잘 살 수 있을지, 자식들 교육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며 삶의 기나긴 역사를 써 왔을 것이다. 

 

입석리 마을회관


입석리 마을회관 앞에는 자식을 마중이라도 나온 듯이 소박하게 선 소나무가 한 그루 있다. 오랫동안 마을회관 마당을 지키며 서있었을 이 나무도 얼마 후면 물 속으로 잠길 것이고 언덕빼기로 구불구불 나 있는 길들과 그 길 가 담벼락에 기대 자라던 꽃나무들도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다행히 용소마을 끝자리에 있던 노거수는 수몰을 피하게 됐다고 한다. 문화재나 보호수 등 원형이 훼손되거나 복잡한 이주절차를 거쳐야 할 일들은 없다.

 

철거되는 입석리 가정집

 

담수는 언제 어떻게

담수는 내년 2월 즈음부터 시작될 듯 보인다. 당초 계획보다는 6개월 정도 늦춰진 셈이다. 이주단지의 지반이 장마로 침하되는 등의 문제로 터를 단단히 다지느라 이주민들의 주택신축 공사가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이주가 마무리 되면 주민들이 살던 집을 모두 철거하고 유해 폐기물을 처리한 후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를 받은 후라야 담수를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댐에 물은 흐르던 고현천을 막고 빗물을 가두어서 천천히 수위를 올린다고 하니 넘치는 댐을 마주하려면 1년은 족히 기다려야 할 듯 하다. 그렇게 이곳에 약 2,211만㎥의 물이 저수된다고 한다.

수몰된 고향을 마지막까지 지키고 있는 주민들을 만나보았다.

- 입석리 최호기 할아버지

 

“12살 때 부터 여기 입석리에서 농사지었어. 아버지께서 농사를 힘들어하시고 나는 공부에는 영 취미가 없어서 농사를 돕는다는 것이 고마 60년 동안 농사를 짓게 된 것이지. 평생 살던 곳을 떠나는 섭섭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
입석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최호기 할아버지(75)는 마른 배추밭에 물을 대느라 여념이 없다. 평생의 마지막 농사가 될 터지만 농작물을 돌보는 농부의 바지런한 손은 여전하다. 보상이 끝나서 이제 내 땅이 아니지만 땅을 놀리는 것은 죄를 짓는 것 같아 올해도 파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주를 기다리며 보낸 세월이 어영부영 4년이 되어가지. 평생 농사지어 자식들 키워냈던 땅인데 놀릴 수 있나. 이것저것 심어서 자식들 올 때 좀 싸주기도 하고 그래야지”
17년 전에 새로 지었다던 집도 곧 물에 잠길 운명이다. 집 주변에는 옛 과수원의 명성을 증명이라도 하듯 과일이 가지가 꺾일 것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이곳에서 난 과일들로 평생 가족들을 먹이고 자식들을 공부시켰다는 최씨 할아버지. 

 

- 입석리 김분남 할머니

 

“남의 땅에 농사짓고 살아서 보상금이 얼마 안되. 이사갈 집을 지으려니 갑자기 형편이 어려워 졌어요. 농사는 이제 힘이 없어서도 못 짓지만 지을 땅도 없어요. 인제 몇 집 안남았어요. 저 쪽으로 이사간 집은 다 뜯어버리고 여긴 아직 사람이 살아노니 안 뜯은 거지요“
열일곱살에 화북면 공덕리에서 시집와 70년을 이곳에서 살았다는 김분남(80) 할머니는 200평 남짓한 땅에서 키운 토란을 다듬고 있다. 내일 영천장에 내다 팔아야 하는데 밤에 비가 내려 토란이 마르지 않을까 연신 하늘을 보며 근심을 한다.
“4남매를 낳아서 다 결혼시켰죠.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둘째 아들하고 농사지으며 여지껏 살았는데. 이사 가면 해먹을게 없으니 영 아쉽죠. 소소한 농사라도 지어 장에 내다 팔면 돈이 되는데…”
20년전 당시 큰 돈을 들여 잘 짓는다고 지었다는 빨간 벽돌 집도 곧 뜯겨나갈 운명이다. 그 집에서 난 손자가 올해로 스무살이 되었다고 한다.
“올해 콩이며 토란을 조금 심었는데 가물어서 옹골의 물을 퍼다 나르느라 힘들었어요. 이사 가는 것이 계속 미뤄지고 정확치가 않으니 마음이 영 떠서 안정이 안되요. 나이가 많으니 이제 좀 편하게 살아야 하는데…” 

- 입석리 한준현 할아버지

 

“여기서 나서 80년 동안 살았어요. 주로 사과농사 짓다가 담배를 한 30년 했죠. 담배농사로 애들 공부 다 끝내고 늦게 사과 시작해서 한 25년 과수농사 지었죠. 댐 건설로 보상을 조금 받았는데 나는 이제 늙어서 여기 있은들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도 없고 해서 시내로 나가고 아들이 여기 남았어요. 이제 애들한테 걸그적 거리기나 하고… 가끔 들어와서 아들 농사짓는거 거들어 주기나 하죠”
한준현(78) 할아버지의 땅 3,500평은 수몰지구에 포함되고 이제 남은 땅은 오백평 정도라고 한다. 다행이 친척들의 땅이 있어 아들은 농사를 계속하고 이 땅의 주인으로 평생을 살았던 한씨 할아버지는 아들 농사를 돕는 조력자로 한발 물러나게 되었다. 땅이 수몰되면서 평생의 삶의 방식이 뒤바뀌게 된 것이다. 이주단지로 이사 갈 한씨 할아버지의 둘째아들은 농사를 겸해 댐 일대를 자원으로 새로운 관광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7남매에 부모님까지 10명의 가족들을 다 농사지어 먹였어요. 조상들이 물려준 땅에서 평생 농사짓고 살다 죽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떠나게 될 줄 생각도 못했어요”
어릴 때 장치기 하고 놀던 친구들이 이젠 다 흩어지고 어쩌다 만나는 친척들을 보면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말하는 한씨 할아버지.
이 동네에 사람이 가장 많을 때는 한 80호 됐어요. 셋방 살던 가구수 까지하면 100가구 정도 되었죠. 평균 5인 가정이니 400명 정도가 살았던 셈이지요. 이 시골동네에 400명이라니 상상이 안가죠. 고향을 떠나는 심정이요? 내가 나가고 싶어서 나가는 거는 어디 가도 좋은데 나갈 맘이 없다가 나가게 되니 친구들 만나도 말도 못하고, 친척들을 만나도 눈물이 앞을 가려요“

 

- 용소리 서춘자 할머니

 

“스무살에 시집와서 55년 세월을 여기서 살고 있지. 사과 하고 고추 심어서 애들 다 먹이고 공부시켰어”
동네에 살던 두 집이 어울려 먼저 집을 짓기 시작해 이주단지 첫 입주자가 될 서춘자(75) 할머니는 11월이면 이사를 갈 예정이다. 현재 살던 집에 비가 세서 300만원을 들여 기와지붕을 얹은지 일년 반 밖에 안돼서 아까운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새 집에 손주들이 놀러올걸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고 말하는 서씨 할머니.
“요새는 남은 땅에 농사 조금 지어논거 수확하느라 회관에 가서 놀 시간이 없어. 평생 지었던 농사도 올해로 마지막이지. 동네 사람들은 절반 넘게 나가고 현재 12집 정도 남았어. 대구로도 가고, 강원도로 간 사람도 있고, 은하수 단지 가는 사람도 있고… ”
라고 말하며 400여평에 심은 콩을 타작하느라 바쁜 손을 움직이고 있다. 평생 짓고 살았던 농사의 마지막 작물이다.

 

- 권오철 할아버지, 곽태연 할머니 부부

 

“웃대 고향이지만 나는 청송에서 났어요. 대처를 떠돌다가 40년 전에 고향에 돌아와서 살았습니다. 들에 썼던 부모님 묘를 이장했지요. 안하면 좋지만 우야는교 어쩔 수 없지. 젊을 때부터 의지하며 살던 친구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제는 다 헤어진 택이지요. 멀리 가니 서로 연락도 끊기고… 고향 떠나니 마음이 많이 안됐지요”
언제쯤 다 될지는 모르겠지만 올해 안에는 이사를 가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권오철(83) 할아버지와 곽태연(86) 할머니. 귀도 안들리고 거동도 불편한 할머니가 이사가서 잘 적응해 살지 걱정이라고 권오철 할아버지는 말한다.

 

- 용소리 오출이 할머니

 

“여기서 54년 살았지. 결혼하고 도시에서 살다가 들어와 농사짓고 고향삼아 이제껏 살았어. 처음에는 보리콩 농사지었는데 늘 짜치드라고. 그래서 담배하고 누에먹이고 했는데도 빈손으로 시작해서 그런지 늘 풍족하진 못했어”
새로 짓는 입석교회를 따라 은하수 마을로 이사를 가는 오출이 할머니는 교회 옆에 작은 집을 지었다. 평생 가난하게 살아서 집도 좋게는 못 짓지만 그래도 새 집이 완성되어가니 기분이 들뜨고 행복하다는 오출이 할머니
“나는 믿는 사람이 돼서 그런가 섭섭한 마음도 크게 없어. 그런데 여기서는 콩같은 것을 갈아 애들 봉다리에 싸주는 재미가 있었는데 거기 가면 땅도 없고 암껏도 없어서 그런것도 이제 못하지. 이웃하던 저 윗집은 이사갈  날 밭아놓고 바깥양반이 돌아가셨어. 목놓고 우는데 같이 늙어가며 쌓은 정이 무서워. 나도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 입석리 김종은 이장

 

“아직 가라앉지 않은  소요산을 깎아서 이주단지를 만들었는데 폭우로 다져놓은 부지가 내려앉았어요. 그러니 아직 집을 못짓고 이사를 못한 거지요. 수자원공사에서 이주단지 공사를 하는 상황이라 이사가라는 말을 못하고 담수도 늦어지는 거죠. 추가 공사비가 7억 정도나 된다고 사람들이 말하더군요. 무너진 부분을 보강하고 길도 다시 만들었고 관도 다시 묻었어요”


입석리 김종은(50) 이장은 이주단지로의 입주가 늦어지는 상황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다.
올 추석전까지 입주할 예정이었는데 아직도 못하고 있는 것은 이주단지 공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수자원공사에서는 올 10월부터 담수할 계획이니 빨리 집을 지어 이사를 나가라고 종용했지만 수자원공사에서 시공했던 이주단지에 문제가 발견되어 공사도 이사도 담수도 늦어지고 있는 실정이라도 전했다. 김 이장은 현재의 상황으로 보면 내년 봄이 되어야 입주가 가능할 것 같다고 한다.

 

용소리 마을회관


“이주비가 4,000만원인데 그 돈을 받아서 시내로 나가거나 은하수 마을로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예요. 은하수 마을은 개별적으로 집을 지어 나가는 곳이죠. 이주단지로 가는 사람들은 이주비 4,000만원을 받지 않고 자부담 3,400만원을 더해 총 7,400만원 정도에 150평 정도를 분양 받는다고 보면 되죠. 농사짓던 땅이 5,000평 정도 되는 사람은 보상비용이 10억이 넘어가니 괜찮지만 다른 집들은 참 어정쩡해요. 2, 3억 받아서 시내 나가서 집사고 나면 사업 시작할 돈은 안되는 셈이죠. 저는 수몰지구에 땅이 1,500평 정도였는데 평균 땅값을 계산해보니 평당 10만원 정도 되더라고요. 250평 정도 남은 땅은 채전밭을 하고 이주단지에 이주해서 다른 사업을 모색해야죠”

 

용소리 비


입석주민 전체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향 설정을 하는 것이 이장의 일이라고 말하는 김종은  이장은 이주단지 공사와 입주 등의 일 때문에 늘 동분서주 한다.
댐 주변을 관광자원화한 펜션사업, 먹거리나 농산물 판매사업 등 관광사업을 통해 이주민들이 정착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는 김이장은 이주민들이 공동체의 형태로 관광사업을 하고 또 공동 생계용지를 만들고 작목반을 구성하여 생계를 꾸려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용소리 마을


수자원공사에서는 “애초 이주단지는 현재의 위치가 아니었다. 주민들이 선택한 곳에 이주단지를 만들었는데 그곳의 흙이 붕적토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7월에 150mm정도의 폭우가 내려 지반이 침하되었는데 오히려 이 폭우로 이주단지의 위험과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게 돼서 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수자원공사에서는 이주단지에 전기, 하수도, 정화조 등 기반시설을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안정적인 이주를 돕고자 애쓰고 있다. 보상비 외에 이주비용과 공동 생계용지를 위한 저리 대출금 등 다각도의 지원을 모색하고 있으며 시에서도 짚라인과 산책로, 전망대, 유람선 등을 통헌 보현산댐 관광자원화 계획을 구상중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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