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공공의 적이 되지 마세요 - 김대환 칼럼

영천시민신문기자 2012. 12. 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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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의 적이 되지 마세요-김대환


대학생 휴학수가 전국에서 100만명이 넘는 무서운 구직대란이 한반도에 가득 찼다. 취직자리가 없으니 일단 휴학하여 졸업을 늦추고 보자는 편하지 못한 마음이 이제 당연시 같은 느낌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던 간에 일단 일자리 만들기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두고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에 분홍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니 엄동설한에 다소 아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온다.


삶이 언제부터 이렇게 팍팍해졌는지 대학교 졸업하여 취직자리 얻으면 가문의 영광으로 변한다. 천연자원이 부족하고 땅덩이가 작은 나라에 생산인구가 적고 비생산인구가 전반적으로 많은 탓일까. 그래도 이렇다할 명문대를 나오면 취업문이 다소 쉬이 열리니 명문대 입학 또한 치열한 경쟁이 아닐 수 없다.
정치가 크게 변화하려면 용트림을 길게 하는 2012년의 대한민국 이었다. 민주화 속에 경제가 그런대로 지각변동을 한 후 초가지붕이 슬레이트로 바뀌고 연이어 시멘트 콘크리트로 도시화, 선진화, 세계화의 옷을 입었다.


열정과 잠재력은 은근과 끈기의 후예답게 세계경제의 극심한 나쁜 공기를 뚫고 금년에도 무역 1조 달러를 지켰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가 정신이 투철했기 때문이다. 기업도 기업가도 사회의 전화 속 민주시민의 사고도 시대에 맞게 진화하였다.
18대 대통령을 뽑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 한국정치의 행태는 아직 제자리에서 맴을 돌 뿐이다. 연계하여 보면 경제의 꽃을 피우는데 정치의 탁한 공기는 경제에게 동양을 주지 못하는 처지에 쪽박을 깨고 있는 현상이다.


진취적이며 지혜로운 포용과 소통의 유전자는 처음부터 받지 못한 것일까. 이 땅위의 진보파와 보수파 말이다. 양파는 정녕코 찌르기와 막기 밖에 모르는 단순한 고전의 다투기 수밖에 없나. 조선조의 당쟁보다는 일단 자유로운 할큄의 악순환만 보았다.


조선이 당쟁 때문에 망했다는 식민사관은 해방 이후 태생한 지성인들의 그릇된 역사인식의 오류가 빗어낸 병든 사고가 원인이다. 결코 조선은 당쟁 때문에 망하지 않았다. 당쟁은 선조에서 정조에 이르렀고 가장 치열했던 시기는 현종에서 정조 때였다. 학자에 따라 조선의 당쟁을 아직까지 연구 중에 있지만 다만 당쟁으로 500년 주춧돌이 무너진 것은 아니다.


국민들의 가슴 속엔 새로운 정치의 장을 보고 싶어 하는 설렘이 가득했다. 그러하였기에 어느날 변방에서 귀족스타일의 새 인물은 국민이 원하였기에 왔다면서 홀연히 나타났다. 그러나 한 두어 달 거친 황양의 모래밭에서 그는 오염된 전치환경에 견디지 못하고 두통과 복통과 가슴 답답함을 감추며 대선열차에서 내렸다.


언제까지 어떻게 가고 그 종말은 어떻게 막을 내릴는지 의심스럽다. 좌파 대 우파다 또는 진보 대 보수다. 여야 모두가 조선조의 당쟁보다 훨씬 더 끈질기고 길게 뻗치고 있다. 그러한 틈새를 뚫고 얼마 전 치렀던 한성판윤(서울시장) 뽑기에서 여야는 장안의 시민들에게 외면당하고 여도 야도 아닌 제3자가 된 것이다.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여 이제 당신들이 정녕코 대오각성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 그렇지 않으면 윽 하면 당신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고 들먹였다.

 

이에 대비한 국민들은 당신들이야 공공의 적으로 지목할 수 있음을 당신들은 모르지. 국가와 국민들을 위하여 한 생을 받쳤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면 공공의 적으로 생각하는 국민들은 없다. 삶의 다양한 가치관 속에 국민의 행복을 위하여 통치자가 움직이며 고민함은 정치도 일종의 예술이 아닐까. 마음을 열고 비우면 소통과 상생의 길이 열린다.

 

주인과 나그네, 스님과 절간사이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있다.
탕평의 인사로 동서의 벽을 허물어라 원칙과 신뢰의 철학으로 진보와 보수의 철벽을 깨라. 지금 위기관리가 또 백년을 이어간다. 통합과 소통의 유전자를 한국의 성숙한 정치예술로 이식할 수 있다. 그것이 국민의 행복을 위한 정치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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