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겨울을 품은 봄 - 김대환 칼럼

영천시민신문기자 2012. 3. 3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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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품은 봄 - 김대환

검증 후 실수와 오를 범하면 믿음 사라져

 

산의 그림자가 물에 안겨 무거운 동면속 겨울을 품은 봄이 엊그제 대지를 촉촉히 적신 봄비에 흙을 찢고 내어민 새싹들은 떠들썩한 인간의 세게를 신기한 듯 바라보면서 선거보다 더 어려운 공천과정을 지켜보며 샛노란 얼굴 위에 내려앉는 봄햇살을 수줍어 한다.
배신의 봄바람이 호수의 은물결 위에 강한 자장가를 풀어놓으며 회한의 포효를 달래어준다. 사나이 한 목숨을 공천에 걸었는데 무심한 3월의 춘풍은 그렇게 겨울을 길게 품드니 애가 끊어질 듯한 경선의 여론조사 속 순간을 지켜온 낙동강 사공은 허공만 바라볼뿐이다.


산도 물도 눈물을 토하면서 불확실한 4년 후를 다시 생각하자며 무정한 3월은 그렇게 이별을 그렸다. 정치공학의 법칙속에는 무조건 거머쥐어야 하는데 문학의 길처럼 작은 인연들로 인생이 아름다울 수는 없다.
담는 용기에 따라 모양이 바뀌는 물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살이는 없는 것일까. 봄햇살 고즈넉한 산길을 따라 세상사 풀어놓고 김삿갓도 아니고 법정스님이 아니라도 그냥 한적함 속에 팍팍한 나날이 너무 미끄럽고 비겁함이 늘려 있어 인생무상을 반추해 본다.


애잔스런 3월은 산골 소녀 같다. 절간이 건너에 보이는 입구 언덕위의 집에서 살며 아래로는 절간 뒷골에서 타고 내려오는 사철 쉴새없이 흐르는 골짜기가 발 밑에 있어 소녀의 마음 같은 맑은 찬물이 흐른다. 3월이 저물며 새롭고 새것을 가져올 4월이 어김없이 잔인하게 문을 열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정확한 사고로 완벽하며 확실한 것을 찾는다. 그러나 애당초 잘못된 인연처럼 완벽하고 확실한 것은 없지 않겠나. 그래서 뒤를 따르는 것이 의심과 검증이다. 샅샅이 검증했는데 실수와 오를 범한 후 더는 믿을게 없다고 푸념한다.


삶의 의미는 자신의 완숙함이 아니고 주변과 주변사람, 사회와의 관계속에서 어우러지는 것이고 일상에서 의미를 추구하고 발견함은 사회의 장, 즉 공동체뿐이다. 의미있는 삶을 찾기 위하여 다문화 가족과 특히 죽음을 안고 찾아오는 탈북민의 삶 앞에서 무조건 배만 고프지 않으면 삶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람 잘못 만나 사람 잘못쓰면 업을 망치고 삶까지 망가진다. 보좌관도 비서관도 잘 뽑아야 한다. 터지고 나면 나는 모르는 일이다 하고 속보이는 소리들 하지말고 말이다.


무디어진 지성과 감성은 세월이 가져갔다. 저만큼 봄처녀가 손짓하고 나비 앞장세우고 강남갔던 제비가 긴 날개로 완급을 조절하며 봄을 마음껏 수놓는다. 공천후유증 속에 백의종군 하겠다는 사람과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탈당하는 사람 등의 부류를 보며 제비와 봄꽃들은 내가 알일이 아니란다.
매화의 소담스러움과 목련은 하얀 치아를 보이며 분홍빛 미소를 머금었다.


벚꽃이 눈을 뜬다. 개나리 진달래가 화려한 외출을 준비하며 도화와 살구꽃도 예쁘게 단장하며 나비와 벌을 기다린다.
겨울 품은 봄이 배신의 계절로 부활해 보이는 후보들은 야망의 봄으로 갈아 탈 것이다.
플라톤의 정치철학은 좋은 사회는 덕이 있는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덕은 개개인의 특성에 의존한다고 했다.
개인이 사회보다 중요하며 바람직한 사회의 속살을 확인하려면 개인의 본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배신의 계절 괘씸함이 어찌 없겠나. 공천도 비례대표도 모두 낙점되었다. 마음을 비우고 달래며 분위기를 바꿀 겸 고시조 한 수 읊어봄은 어떨지.
나비야 청산가자 벌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날 저물면 꽃잎에 쉬어가자 꽃잎이 푸대접을 하거들랑 나무밑에 쉬어가자 나무도 푸대접하면 풀잎에서 쉬어가자.


너무 가지려고 하거나 어떤 자리의 쟁취를 위해 연연하고 집중하는 것은 욕심에 불과하지 값진 삶의 철학이 아니하고 덧붙이고 싶다.
무엇에 어떤 일에 가치를 두느냐가 인생관이다. 곧 개인의 철학이다. 가치는 마음속에 있어도 객관적이어야 한다.
‘겨울을 품은 봄’이라해도 봄은 봄이다. 봄을 품은 봄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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