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격납고 아직 그대로 남아 있어”
“군사요충지임을 증명해주고 있다는 주장”
일제강점기 비행기 격납고가 봉죽리에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군사요충지 영천이 다시 증명되고 있다.
금호읍 봉죽2리 37번지 일대 과거 일본군이 비행기 격납고(비행기를 숨기거나 수리하는 곳)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원형을 유지한 채로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다.(본지 2013년 보도)
현재는 이곳 한곳만 원형을 보존하고 있으나 10여년 전만해도 이 콘크리트 구조물은 산발적으로 봉죽리 전체마을에 군데군데 그 흔적이 있었고 이런 구조물은 신월리 입구 한 목재소 뒤편 농로에도 격납고로 보이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한 개 보였으며, 황정리 등에도 1-2개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봉죽2리 양문식 이장은 “현재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곳은 이곳뿐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사람들이 만든 것인데, 비행기 격납고로 보고 있다”면서 “당시 일본사람들은 한국인들을 동원해 밑 부분은 모두 흙으로 둥글게 쌓고 위에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콘크리트 속에는 대나무로 지탱하게 만들었다. 군데군데 대나무가 보인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문화재 등으로 지정되지 않고 개인부지에 있기에 안전시설 등이 필요하나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는 것이 걱정이다.”고 설명했다.
양 이장은 또 “여기는 이곳뿐 아니라 신월리 황정리 등에도 격납고 시설이 남아 있다. 원형은 아니지만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면서 “일본사람들이 이곳을 비행장으로 활용한 것으로 짐작하는데, 이는 영천이 그만큼 군사적으로 요충지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증거다. 군사요충지를 더 부각시켜 현재 대구시 군부대 통합이전을 영천으로 모두 유치하는 것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이곳 격납고는 2018년 5월 문화재청에서 근대유산 문화재로 등록키 위해 현장 조사활동을 폈는데, 영천 격납고가 아주 우수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런데 신월리 격납고는 문화재 등록 움직임이 있은 뒤 바로 파손되기도 했다는 보도가 있다.
이를 분석하면 일본사람들이 이곳을 비행장으로 활용한 것으로 판단되며, 이는 영천이 그만큼 군사적으로 요충지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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