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천 시

명사탐방, 서진원 신한은행장

영천시민신문기자 2012. 1. 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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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탐방

서진원 신한은행장, 단포다리밑 금호강에 고기많아

 

서진원 신한은행장은 영천시 임고면 언하동에서 태어나 단포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대구의 계성고와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ROTC 12기로 임관하여 장교로 군복무를 마쳤다. 1977년 서울신탁은행에 입행한 후 1983년 신한은행으로 옮겨 인력개발실장, 서울 면목동지점장, 포항지점장, 전산정보부장, 인사부장, 개인고객본부장 등 영업일선과 본부관리직의 요직을 두루 거친 후 2004년 부행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신한금융지주회사 부사장, 신한생명보험주식회사 대표이사 사장을 거치면서 2010년 12월 신한은행장에 부임했다. 서진원 신한은행장은 취임한지 1년만에 탁월한 위기관리능력을 발휘하여 그동안 경영권분규사태로 심한 몸살을 앓았던 신한은행의 내부조직을 조기에 안정시키면서 그간의 후유증을 수습하고 시장에서는 고객의 신뢰와 대외적 평판을 회복하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종욱 한국체육대총장, 김홍신 건국대석좌교수 등과 함께 대한민국ROTC중앙회에서 선정한 ‘올해의 자랑스러운 ROTC’에 선정됐다. 고향 영천의 자랑스러운 향우로서 대한민국의 금융을 선도하는 리딩뱅크인 신한은행을 이끌어가고 있는 서진원 신한은행장을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보았다.

- 행장님은 임고면 언하에서 태어나셨네요. 어릴적 고향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당시 단포초등학교 교장으로 계시던 부친을 따라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단포에서 자랐습니다. 지금 향우회장을 맡고 계시는 김홍주 회장님댁과는 바로 이웃이었고요. 고무줄로 만든 새총으로 참새 잡는다고 쏘다니던 일, 횃불을 들고 몰려드는 물고기를 돌멩이로 내려쳐서 잡는 소위 ‘불치기’로 수많은 여름날 밤을 보냈던 일들이 지금도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영천댐이 생기기 전이라 단포다리 밑의 금호강은 넓은 강폭에 고기도 참 많았던 것으로 기억이 나네요. “

- 대구 계성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셨는데요. 학창시절 얘기를 좀 들려주시지요?
“부친이 교직에 계셨지만 집안에서 과수원도 하여 크게 어렵지는 않은 학창생활을 보낸 것 같습니다. 자취도 하고 하숙도 하면서 보낸 학창생활은 그냥 평범했던 것 같습니다. 대학시절 전공과 관련해서 문화유적답사를 다니면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 훌륭한 문화유산을 남긴 우리 조상들과 역사에 대해 보고 배웠던 일, 방학동안 ROTC군사훈련을 받았던 일이 생각납니다. ROTC장교생활은 힘들기도 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조직을 관리하는 리더십을 배운 소중한 기회였다고 생각이 되는군요.”

- 행장님은 효자로 주변에 많이 알려져 있던데요. 부모님을 어떻게 모시고 계신지요? 고향인 영천에는 자주 가시는지요?
“효자란 얘기는 사실 부끄러운 얘기고요. 대구에 계신 부모님들을 사정이 허락되는 데로 자주 찾아뵈려고 애쓰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동안 객지생활을 하면서 부모님을 직접 모시지 못한 게 항상 죄송할 따름이지요. 벌써 구순이 되는 부모님들이 아직은 건강하신 게 오히려 고맙게 생각됩니다. 그리고 고향 영천에는 이제 친척어른들도 거의 계시지 않아 자주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1년에 한번 추석명절이 되면 성묘를 위해 어부실(고경황수탕 근처)에 있는 선산을 찾는 정도입니다.”

                                         서진원 은행장과 서울본부 기자들


- 신한은행의 최고 수장이 되기까지 가족들의 도움과 희생도 많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가족들의 얘기도 좀 해주시지요?
“아내와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화려하지도 않고 평범한 은행원생활이었지만 직장생활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집안일에 신경쓰지 않도록 우선적으로 배려해준 아내의 내조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특별히 신경써주지도 못했는데 스스로 자기 길을 잘 가고 있는 아들에게도 항상 고맙다는 생각을 합니다.”

- 신한은행장으로 취임하신 후 지금까지 1년동안 가장 역점을 두신 일은?
“아시다시피 신한은행이 창립된 후 가장 어려운 시기가 아닌었던가 생각됩니다. 우선 내부조직을 안정화시키고 대외적으로는 은행의 생명과도 같은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또한 그동안 대한민국 금융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온 리딩뱅크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최고경영자로서의 임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취임한 이후 모든 임직원들이 한마음이 되어 고객과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여 대외신인도, 고객만족, 사회공헌, 브랜드, 그리고 일하기 좋은 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한민국 일등은행으로 선정되고 수익성과 건전성 등 은행경영 전반에서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1년은 오랜 은행원생활 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바쁘게 보낸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 신한은행은 우리나라 시중은행 중에서도 역사가 제일 짧다고 알고 있습니다. 후발업체인 신한은행이 대한민국 금융의 패러다임을 리드하는 은행이 된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1982년 자본금 250억원, 3개 지점, 279명의 임직원으로 시작한 신한은행은 현재 국내외의 1,000개가 넘는 지점망, 15,000여 명이 근무하는 국내 최고의 은행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러한 압축성장의 비결은 고객서비스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고객만족(CS)을 최우선으로 삼은 명확한 비전, 끈질긴 도전,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 신한WAY라는 차별화된 기업문화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1977년 서울신탁은행에 입행하여 1983년 신한은행으로 옮긴 후 은행장으로 부임하기까지 34년간을 금융인으로서 외길을 걸어왔습니다. 뱅커를 꿈꾸는 고향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30년 넘게 금융인의 길을 걸으면서 영업현장은 물론 IT, 인사, 전략, 경영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LG카드인수, 신한생명의 중견보험사 도약, 최근 신한은행의 견실한 성장 등 조직의 발전을 위해 나름대로 기여해왔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 경험을 바탕으로 뱅커를 꿈꾸는 고향후배들에게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급변하는 시대적 변화와 금융환경에 대처하기위한 끊임없는 전문적인 업무역량 확대와 자기계발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행은 고객의 소중한 재산을 관리하는 곳인 만큼 정성이 담긴 서비스정신과 신뢰관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로지 정도를 걷겠다는 건전한 윤리관과 성실성이 바탕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최동필 서울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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