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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3억 원까지 이룩한 영천 최고의 카마스터 김성수 기아 판매원- 노력한 만큼 보수가 따르고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이라 젊은이들에 권유

영천시민신문기자 2021. 11. 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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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3억 원까지 이룩한 영천 최고의 카마스터 김성수 기아 판매원”
“노력한 만큼 보수가 따르고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이라 젊은이들에 권유”

 


영천에서 차판매를 가장 오래한 사람하면 금방 떠오르는 사람이 김성수 기아 카마스터(61, 영천시 동부동)라고 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올해 32년째 자동차 판매 영업을 해온 김성수 카마스터는 후배들 못지않은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영천시민들에 좋은 차, 새로운 차를 안내해 주면서 코로나19에도 평소 보다 낳은 판매 실적을 올리고 있는데, 이유와 그동안의 얽힌 사연을 들었다.
김성수 카마스터는 90년 4월 기아차에 처음 발을 디뎠다. 당시만 해도 차 영업사원은 주변에서도 많았다. 그런데 나이가 30이 넘는 바람에 들어가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웠다.


그래서 당시 영천영업소장님과 기아차 면접관님에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90년대 중반에는 차가 처음으로 시민들에 잘 팔려나가기 시작할 때다. 영천영업소 이름이 기아자동차 동대구역영천출장소였다. 직원은 6명이 근무했다. 6명이 근무했지만 판매에서는 아주 뛰어난 직원들이 많았다. 한 달에 약 150대 이상을 팔았다.

 

김성수 기아 카마스터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직원 1명이 20대 이상을 판매하는 셈이다. 아마 영천시 인구도 15만 전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땐 할부제도도 없어서 차를 사면 거의 현금으로 거래할 때다. 돈을 받으면 동대구로 가서 돈을 주고 차를 가져온다. 올 때 대구시민운동장 옆에 있던 차량등록소에 들러 등록을 하고 온다. 이후 등록소는 경상북도로 분리해서 경주에 생겼다.


차를 받아 오면 경주에 가서 등록했다. 1대씩 가서 등록하는 것이 아니고 4-5대씩 모아서 한꺼번에 등록하고 돌아왔다.
정말 놀랄 정도로 차가 잘 팔렸다. 첫 월급은 60만 원 정도로 기억한다. 3개월째부터는 2백만 원 이상을 받았다. 당시 공무원 친구들 월급이 20만 원 정도였다.
계속 수입이 좋았다. 정확히 10년 정도 잘 나갔다. 95-97년 경에는 통장에 2-3억 원이 들어 있었다. 이때 선배들이나 부모님께서 미래를 위해 부동산이나 다른 곳에 투자를 가르쳐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나를 제외한 직원들 모두 총각이었다. 그러니 저축이나 투자는 모르고 씀씀이만 컸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는 없으나 좀 어리썩었다. 물론 상대적인 경쟁자인 현대차 영업사원들도 잘 나갔다. 우리보다 더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2000년 초반 직원 수가 최고 24명까지 늘었다. 지점장 1명에 1팀과 2팀이 있었다. 이제까지는 국내 경제도 좋았으며, 영천시 경제도 농촌이나 시내 모두 좋았으나 이때부터 서서히 내리막을 가고 있었다. 많았던 직원들도 하나 둘씩 줄어들어 5년 사이 10명 이상 줄었다.
다행히 2005년경부터 기아차와 현대차 대리점 제도가 생겼다. 근무하던 사람이 나가면 대리점을 준다는 것이다.
기아차 동부대리점을 받아서 나왔다. 책임감이 상당히 강한 자리다. 대리점 대표로써 6명의 직원들과 함께 뛰었다. 대리점을 하려면 담보금(2억 원)과 점포, 경리직원, 운영비 등은 자부담이었다. 부담은 있었으나 10여년의 경험으로 직원들과 함께 힘을 모았다.

 

기아차를 설명하고 있는 김성수 카마스터

 


국내 경기는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직원들이 열심히 뛰어 주니 계획 이상으로 차를 판매했다. 한 달에 60대 이상을 팔았다. 직원 1명이 10대 정도를 판 셈이다.
수입도 상당했다. 가장 많은 수입이 오를 때는 월 3천만 원 이었다. 조금 떨어져도 월 2천만 원 이상은 항상 유지했다. 6년 정도를 이 상태로 갔다. 직원들에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것도 잠시다.


단골들이나 아는 사람들이 보면 영천돈 다 모아서 어디에 썼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자리를 빌려서 말하지만 앞전에 말한 ‘책임감이 상당히 강한 자리다.’는 것이 여기서 나온다. 직원들의 엉뚱한 행동으로 상상도 못하는 금액(10억 원 이상)을 공금횡령 당한 일이 발생했다. 차를 판매하고는 현금은 자기들이 다른 곳에 다 써버리는 것이었다. 대리점 점주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횡령금액을 변제하고 차후 직원들로부터 횡령액을 받은 것이다. 티끌모아 태산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이로부터 동부대리점도 내리막을 걸었다. 10년 정도 대리점을 운영해 오다 2016년에 기아자동차 서부대리점(대표 소장 이상필)과 합병하고 오늘날 완산동에 위치한 기아자동차 별빛대리점이 탄생하고 현재 직원 8명과 함께 영업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2020년 2월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전세계가 움츠러들고 사람이 다니지 않았다. 자동차 판매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 모두 생각했으나 완전 기우였다.


김성수 카마스터와 직원들은 코로나19로 차가 더 잘 팔렸다고 한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이유가 여기에 숨어있었다. 코로나19 확진 환자들은 대부분 대중들과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등 대중으로 인해서 전염됐다는 것이 훨씬 많았다. 그럼 대중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혼자서 다니는 것이다. 혼자서 다니려니 걸어서는 못 다닌다. 이 바람에 차를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초기인 3-4월부터 서서히 차가 더 팔렸다. 지난해도 차를 많이 팔았다. 올해 7월까지 월 40대 정도를 팔았다.

 

라이온스 총무. 회장 시절 라이온스 회원들과 함께한 김성수 카마스터

 


그런데 오히려 어려운 것은 코로나19가 아니라 자동차 반도체 때문이다. 반도체가 없어서 차를 못 만든다는 소리가 오래전부터 나오더니 올해 8월부터 현실화로 나타났다.
8월 이후 자동차를 못 만들어 소비자들에 차를 못 전해 주고 있다. 현재 계약한 차 대수로 3-400대가 넘는다. 해약하려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코로나19보다 더 어렵다. 내년 하반기나 가서 차가 계획한 물량만큼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기아차 뿐 아니라 우리나라 자동차 3사가 모두 마찬가지다.


김성수 기아차 카마스터는 “영천에는 자동차 부품회사가 지역경제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경제력은 대단하다. 그런데 가면 갈 수 록 침체할 것으로 생각한다. 지역 경제도 이를 계기로 전환점을 찾아야 한다.”면서 “젊은이들이 자동차 영업을 하려면 말리지는 않는다. 자신이 열심히 하면 노력한 만큼 보수가 따르고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이라 이 보다 좋은 직업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현재는 채용 계획이 없다는 것이 서글프다. 인원충원이 거의 없을 것이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기아차가 국내 점유율도 높아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기아는 현대를 능가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현대가 못하는 틈새 공략을 잘하는 기업이라 상생하면서 국내외 판매량을 늘려 나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김성수 카마스터는 차 판매 외에도 영천라이온스 총무와 회장 20년, 영안중학교 총동창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지역사회 왕성한 봉사활동도 빠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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