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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마라토너의 끝없는 도전, 출향인 김종주씨

영천시민신문기자 2011. 12. 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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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순 마라토너의 끝없는 도전, 출향인 김종주 씨


올해로 실제 나이가 85세인 할아버지가 건장한 성인들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해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재경향우회 원로인 김종주 씨.
영천시 오미동이 고향인 김종주 씨는 지난 10월 23일 조선일보 춘천국제마라톤대회에서 6시간23분14초의 기록으로 42.195km 풀코스 완주했다.


85세의 노령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자랑스러운 향우를 소개하고자 인터뷰를 요청하였다. 재경영천향우회 사무실에서 전한태 향우회부회장, 윤벽희 사무국장 등과 함께 김종주 씨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김종주 씨는 나이 50세에 마라톤을 시작한지 11년만인 61세에 4시간 25분29초의 기록으로 첫 풀코스 완주한 이후 85세인 올해까지 무려 16회나 풀코스 완주한 것은 아마도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기록일 것이다. 그러나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니 이것은 놀라운 겉모습일 뿐 그동안 살아온 이력과 정신이 더욱 범상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최동필 서울본부기자, 김종주씨, 전한태, 윤벽희 서울본부기자(좌로부터)

 

재경영천향우회의 자문위원인 김순도 서울로얄호텔회장의 친형이기도한 김종주 씨는 일제치하에서 영천남부소학교(현 영천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당대의 석학이신 백부에게 대학, 맹자, 주역 등 한학을 수학하며 주경야독했다.
1948년 중등교원자격시험에 합격하여 모교인 영천남부초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6·25동란 중에 참전하여 군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제대한 후 1955년 국가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재무부 관재국에서 국가소송대리인업무를 하면서 공직생활을 시작하였다. 그후 국세청조사국과 일선세무서 등에서 근무하다가 1976년 퇴직하였다. 


김종주 씨는 공직생활 21년 동안 지금과 달리 박봉으로 어려웠던 공직생활을 한점 부끄러움 없이 철두철미하게 원칙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어린 시절 백부에게 한학을 배우면서 몸에 밴 선비정신 때문이다고 회고했다. 퇴직 후 가전제품과 김칫독행상을 시작으로 을지로에서 종이도매상을 운영하기도하였으나 1982년 법정관리업체인 동보전기(주)에 기획실장 겸 총무부장으로 법정관리인 직무대리인으로 선임되었다.
이때의 경험을 발판삼아 1984년 처음으로 (주)흥진기연의 법정관리인으로 선임되어 당해연도부터 8년간이나 흑자경영으로 회사를 소생시켜 1992년 흥진기연 상임회장으로 취임하고 부천시 노사공익협의회 의장으로 선임되었으며 부천시민상(산업부문)을 수상했다.


한양공영(주) 소생, 신호페이퍼 진주공장 노사분규타결, 남선정공(주)을 연이어 소생시켜  당시 ‘마이더스의 손’이라 불릴만큼 언론에서 집중조명을 받으면서 신화적인 법정관리인으로 변신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공의 밑바탕에는 김종주 씨의 표현에 의하면 마라톤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이후 한국기업현장경영연구소 원장에 취임하여 부도기업소생방법에 대한 연구와 초청강연 및 경영자문 등 활동을 하던 중 2002년 일등국민이 되기위한 범국민운동 총재에 취임하여 열정적인 새로운 인생에 도전했다.

총재에 취임하여 맨 먼저 한 일이  거리로 나가 직접 담배꽁초를 줍는 일이었다. 마치 법정관리인으로 취임하여 맨 먼저 공장내의 지저분한 화장실을 직접 청소했을 때처럼 몸으로 솔선수범했다. 당시 방송에서도 직접 생중계하면서 뉴스에 내보낼 만큼 화제가 되기도 했으나 전국민적인 호응과 확산이 안 돼 지속되지 못했음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한다.

 

우리 사회, 국가, 민족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다는 그는 80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너무나 꼿꼿한 자세와 온몸에서 열정이 뿜어져 나오는것 같았다. 마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의 사표가 될 만한 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또한 그의 개인적인 목표는 100세까지 마라톤풀코스를 완주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매일 아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최소 5km이상을 달린다는 그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다볼 수밖에 없었다. 
최동필 서울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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