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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재발견 도잠서원, 지산 선생 학덕 충의 기리는 서원

영천시민신문기자 2017. 1. 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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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재발견 도잠서원
지산 선생 학덕·충의 기리는 서원… 지산 후손들 장학금 10억 쾌척
대창면에 위치한 도잠서원



최근 영천시장학회에 거액의 장학금을 기탁해 목표액 예상달성기간을 3년이나 앞당기는 결과를 낳아 언론의 주목을 받은 남매들이 있다. 바로 지산 조호익선생의 후손으로 유배지에서도 후학을 양성하며 생을 바친 지산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10억의 장학금을 약속하고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8억 원을 기부했는데 자신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지산 조호익 선생의 후손’으로만 보도되었다. 선조의 이름을 드러내며 그의 뜻을 이어가고자 지역인재양성에 후원한 높은 뜻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누구인지 또 훌륭한 후손을 내린 지산선생에 대해 알아보고자 도잠서원(道岑書院)을 찾았다.



도잠서원, 대창면 용호리에 있다



미리 인터뷰 약속을 해준 대구가톨릭대 조순 교수(한국사)는 지산선생의 직계후손이며 도잠서원 건립과 역사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이다. 지난 14일 조 교수를 현장에서 만나 서원내부를 돌아보며 서원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창면 용호리에 소재한 도잠서원은 지산 조호익(1545~1609)선생의 학덕과 충의를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0호로 지정되었다. 조호익은 조선중기 문신이며 퇴계 이황의 학문을 이은 학자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공을 세웠기에 죽은 후 이조판서의 직함을 받기도 한 인물이다. 광해군 4년(1612)에 세운 이 서원은 숙종 4년(1678)에 임금으로부터 ‘도잠(道岑)’이라는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고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14년에 복원되고 1981년에 다시 고쳐지었다고 소개했다.


서원내부에는 사당, 강당, 망회정, 신도비, 비각, 사주문 포사 등이 있고 사당에는 위패를 모시고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낸다. 경내를 둘러보고 나서 서원을 관리하는 총무와 조순 교수와 함께 묘우(성모묘)에 들어가 경건한 마음으로 위패에 절을 올렸다.


도잠서원 지키는 조원호 총무



2000년에 서원을 원래 위치인 이곳에 재건립해서 지금까지 관리를 해오고 있는 서원의 총무 조원호 씨는 “연중 사람들이 적지 않게 찾아오고 있어요. 향토사학자나 지역유림들, 그리고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이들이 단체로 서원을 찾는데 누가 오시든지 연락이 오면 제가 달려와 문을 열어드립니다.”라며 “일을 하다가도 연락이 오면 9km 거리를 달려와야 하니 번거로울 때도 많지만 집안을 위한 내 소명이라 여기고 있지요.”라 말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꾸준히 관리를 해오고 자주 드나드는 탓인지 서원내부의 방이 정갈하면서도 비교적 따뜻하게 느껴졌고 마당에 잡풀하나 없고 단정한 것이 다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됐다. 조 순 교수는 “(사)지산선생기념사업회에서는 서원내의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시와 정부의 지원금을 통해서 인성교육관을 건립하게 되면 학생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라 설명했다. 또한 지산기념사업회의 조준걸 이사장을 포함한 4남매가 바로 장학금기탁의 주인공들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다음달 20일경 나머지 장학금을 기탁하고 수여식도 가질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조원호 총무와 조순 교수가 위패를 보이고 있다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지산선생이 관서지방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직접 집필한 ‘지산필화’라는 서적이 있는데 사람이 지켜야 할 50개 덕목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므로 지침서삼아 교육용 교재로 이용할 것이며, 각 대학에 있는 인성교육원과 MOU체결을 통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의 기회를 확대할 계획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마지막으로  옛 인물이 그의 업적보다 확대 해석되거나 업적에 비해 추앙받지 못하고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찾아 연구하는 작업들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도 말했다.


현재 암울한 정국의 지도층들을 보면, 배운 바대로 바르게 실천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지산선생을 두고 창석 이준 선생은 이렇게 평가했다. “지산은 ‘표리무간’ 겉과 속이 간격이 없는 사람이다. 즉 어떤 상황에 닥쳐도 안팎이 같고 틀림이 없었다”며 선생을 칭송한 말이다.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권리에 대한 주장은 거의 하지 않았던 인물이라 여겨진다. 앞으로 지역의 유명서원 혹은 유명한 인물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숨어있는 인물에 대해서도 발굴할 필요가 있고 이룩해놓은 업적에 비해 가려지고 묻혀 알려지지 않은 선현들을 발굴해 알려야 하는 것이 현재를 살고 있는 후손들의 과제가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는 행보였다.
박순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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