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천 시

장애딛고 볼링선수 된 정대균씨

영천시민신문기자 2016. 4. 20.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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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딛고 볼링선수 된 정대균씨

                               경상북도 볼링 대표 선수




화북면 횡계리에 사는 정대균(47)씨는 경상북도 장애인 볼링대표 선수이다. 취재를 위해 화북면을 향해 이동하며 인터뷰 장소를 잠깐 고민했다. 그는 산불감시원으로 자천 일대에서 근무하는 중이었고 그의 집인 횡계까지는 한참을 더 들어가야 했으므로 인터뷰 장소가 여의치 않았다. 고민하던 그가 화북면소재지에서 자신의 차를 뒤따라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산길을 한참 달려 올라간 곳은 화북상수도수원지 둑방길이었다. 정대균씨와 함께 자리를 깔고 앉으니 마치 소풍온 것처럼 낭만적인 인터뷰 장소가 마련됐다. 그는 차에서 보온병과 커피를 꺼냈고 파릇파릇한 수원지 물과 이제 막 신록이 깔리기 시작한 산야를 배경으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19년전 오토바이사고로 한쪽팔과 다리를 다쳤고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게되었어요. 사고 전 기아자동차에서 근무했지만 사고와 함께 직장을 그만둬야 했고 마침 동생이 경기도에서 사업을 하고 있어서 동생도 도울 겸 경기도로 자리를 옮겼어요. 갑작스런 장애와 또 고향을 떠난 울적함을 볼링으로 달랬죠. 사고 전부터 볼링을 좋아했던 터라 일을 마치면 매일 볼링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사고 전 볼링 메니아였던 그에게도 한쪽 팔과 다리에 장애를 갖고 다시 시작한 볼링은 더 이상 호락호락한 스포츠가 아니었다. 스윙을 할 때 중심을 잡기 어려웠고 착지할 때도 몸이 흔들렸다. 이전처럼 몸을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맹 훈련을 하는 수 밖에.


                            경북대표 볼링선수인 정대균씨가 산불감시원으로 활동하면서 인터뷰하고 있다



“매일 저녁 일을 마치면 동생과 볼링장에 갔는데 볼링에 집중하는 것이 장애와 외로운 타향살이에 상당한 위안이 되었어요. 처음에는 몸이 내 맘대로 되지 않았지만 계속 연습하니 조금씩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했죠. 그러던 중 나와 함께 동행해 주었던 동생도 볼링에 취미를 갖게 되었던 거예요.”


정 씨는 1997년 IMF의 강타로 동생의 사업이 기울기 시작하자 고향인 화북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다행스럽게 면사무소 산불감시원으로 채용되었고 현재까지 그의 주요한 생계수단이 되어주고 있다. 11월부터 5월까지는 산불감시원으로 일하고 나머지 기간은 농사를 짓는다는 정 씨는 일이 끝나면 여전히 볼링장으로 향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당시 월드볼링장에는 여러 볼링클럽들이 있었는데 그는 다사랑 클럽(현재 굴린돌)에서 활동했고 클럽활동을 하며 볼링 관련 책을 보며 기술을 독파하는 전문적인 연습에 돌입했다. 

 
정 씨는 볼링이 장애인체전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2006년부터 경상북도 대표선수로 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현재까지 10년 동안 금메달 3번, 은메달 2번, 동매달 4번으로 딱 한 경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메달을 땄다. 경북장애인볼링협회에서 금메달은 100만원, 은메달은 50만원, 동메달은 30만원의 격려금을 주는것까지 그에게 메달 소식은 여간 기쁜일이 아니다. 그래서 메달 소식을 제일 먼저 아내와 어머니에게 전화로 알린다고 한다. 정 씨는 8년전 베트남에서 온 외국인 아내 누엔 자우안씨와 결혼해 현재 두 아들을 두고 있다. 한때 국가대표로 선발돼기도 했었지만 갑자기 장애인 볼링 종목이 없어져서 출전하지 못했다.


정 씨는 “그동안 퍼펙트(300점)를 4번 쳤어요. 퍼펙트란 공을 12번 굴렸을 때 모두 스트라이크를 치는 것이예요. 12번중 1번을 2차례 치고 11번 스트라이크를 하는 279점은 수도 없이 많아요. 평균 에버리지는 200 정도구요 사실 볼링지도자자격증도 있지만 협회나 시 차원에서 지도자를 활용하지 않으니 그냥 가지고만 있죠.” 라고 말했다. 그를 따라 볼링을 시작했던 동생 정이균(44) 씨는 프로볼링선수로 뛰게 되었는데 2002년도에는 SBS 프로볼링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했다다고 한다. 정이균씨는 4년전 프로활동을 그만둔 상태다.


자천의 둑방길에 앉아 강과 산의 바람을 맞으며 진행한 그와의 인터뷰는 한시간 여 동안 계속됐다. 마지막 질문으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들에게 위안이 될 만한 메시지를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내가 이런말 할 자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장애가 생기면 사람들이 대인관계를 끊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좌절감 때문에 사회와의 단절을 택하는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 일단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을 만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위해 무엇인가 한 가지를 열심히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 이동경 시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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