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황제 추모 하는 비석 화북 보현산댐공원에 위치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고종황제를 추모하는 비석이 영천에 있다.
영천지역에 고종황제 관련비석이 있다는 정보를 얻어 지난 9일 화북의 보현산댐공원을 방문했다. 비석의 원래자리는 용소리 고현천 가장자리였는데 댐 공사로 마을이 수몰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오게 된 것이라 하는데 지역민들에게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비석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찾았다.
공원내부의 산 아래에서 비석과 귀부(거북모양의 아랫돌)을 볼 수 있었다. 비석의 정면에서 오른편에 함께 옮겨온 듯이 보이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안내판 내용을 보면 ‘보현산다목적댐 건설로 수몰된 영천시 화북면 용소리 고현천변 단애(斷崖)에 위치했던 비석과 귀부이다. 2011년 4월 18일부터 2012년 10월 12일까지 (재)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시발굴조사를 실시했고 2014년 이곳에 이전·복원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화북면 보현산 댐 공원에 있는 고종황제 추모비
비석은 모두 화강암 재질의 귀부에 비신을 올리는 형태인데 애민불망비에서 18m남쪽으로 떨어져 귀부가 있다. 비석 주위에는 원형 초석 4매가 배치되어 있어 비석을 보호하는 비각이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대한광무황제애민불망비(大韓光武皇帝愛民不忘碑)는 비석이름을 중심으로 좌우에 국유흥폐천명유재(國有興廢天命惟在), 민안경착제력함재(民安耕鑿帝力咸載)라는 글자를 음각했다. 글귀의 뜻은 ‘나라의 흥폐는 오직 하늘에 있고 백성이 밭 갈고 우물 파서 물 마시는 편안함은 황제의 힘이 두루 미치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어렵게 찾은 비석에는 이정표조차 없고 발굴 조사이후 만들었다는 안내판도 부실하기 그지없었다. 네 귀퉁이의 나사가 글자를 가리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무척 허술해 관리가 필요한 실정이다.
애민불망비는 화북면 용소리 옥산 전씨 기록에 남아있다. 옥산 전씨 기록에는 전상필 선생이 고종황제 3년상을 치른 후 애민불망비와 함께 하마비를 세웠다.
이 비석을 세운 뒤 전상필은 일제의 모진 옥고를 치르다 돌아가시고 비석은 1944년 일본경찰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다가 후대에 복원되었다.
제작연대는 애민불망비 옆면의 ‘승하3년(昇遐三年)’ ‘경신오월(庚申五月)’이라는 기년명에 따라 1920년인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백자, 기와, 단조못, 자물쇠, 동전, 분청자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애민불망비와 북쪽으로 18m가량 떨어져 마주보고 있는 귀부는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비신을 올리는 홈이 파져 있다.
대한 광무황제애민불망비를 건립한 전상필은 음력초하루와 보름이 되면 도포를 입고 높은 곳에 올라 서울의 고종황제에게 배례를 올렸고 고종께서 승하한 후 3년 상을 지내고 나서 비석과 하마비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일제의 강압통치아래에도 굴하지 않고 임금에 대한 충절을 몸소 실천한 그의 정신에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박순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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