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왕의자리에서 물러난 후 - 김대환 칼럼

영천시민신문기자 2011. 6. 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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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자리에서 물러난 후 - 김대환

 

쿠데타란 단어는 정감이 없고 어감 자체가 싸늘하며 뭔가 정규의 규정을 뛰어넘었거나 법망을 벗어난 또는 딱딱한 느낌을 갖고 있으며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려는 평가가 다분히 녹아 있다.
군인들이 주동이 되어 역사를 바꾼 5·16이 반세기를 맞았다. 학자들 간에 ‘쿠데타다’, ‘혁명이다’란 논란은 이시간까지 진행형이다. 어쨌건 당시 일인자 박정희는 독재와 경제발전의 쌍두마차를 타고 초가지붕과 보릿고개를 탈피한 주역이라는 사실에 부정할 필요는 없다.


지나간 대통령의 종합측정도 여론에서 이 나라 현대사의 역사 앞에 부동의 1위 자리는 한번도 넘겨준 사실이 없음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 민족의 족적앞에 많은 사고(思考)를 토(吐)하면서도 깊은 상념에 젖게 한다.
단신의 체구는 거침없이 조국근대화의 물결을 일구면서 민족중흥, 중공업건설, 수출우선, 새마을운동 등등은 거의 생활화로 심화했는데 어떻게 국민 모두가 올인했는지 당시 주역인 박정희는 논두렁에 걸터 앉아 공무와 함께 막걸리를 즉석에서 각본없이 마셔버리는 그의 체면술에 국민들은 마음을 열고 취기에 동화된 것이다.


시대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음이다. 성장환경과 군인정신에 죽기를 각오하면 산다는 이론적 배경이 개인의 사욕보다는 공동체와 공공의 이익에 우선한 그의 철학과 맞아 떨어진 것도 배제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1950년대의 시대상은 조국도 국민도 철저한 빈털털이가 되었고 이 속에서 성장하며 살아온 사람들은 가난과 배고픔을 뼈저리게 느껴왔다. 60~70년 중반기까지 전방에서 근무한 현역들은 배고픔을 체험했다. 배가 고프면 고향도 부모, 형제 생각도 마비되고 머리가 멍해진다는 사실 앞에 배를 채우기 위한 생각 이외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말을 실감했을 것이다.


배고픔을 없애기 위한 목적달성에는 민주주의가 경제발전보다 한 걸음 뒤라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음이다. 왕의 자리에서 물러난 후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이 있었다. 어느 한 분 그 뒷자리가 박정희의 자리만큼 크지 못했고 투명도도 약했다.
다만 이 시간까지 사가(史家)들의 저울에 경제발전과 독재란 두 개의 추가 들여진 것에 대한 평가가 아쉬운 점이다.


어느 시대 어떤 성군(聖君)이라 해도 백성 모두의 지지는 받지 못한다. 박정희를 지지하는 사람,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게 바로 인간만이 가진 고차원의 사유하는 힘이다. 경부고속도로를 뚫을 때 많은 사람이 반대하고 입이 삐죽삐죽 하였다.
대물림하는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하여 독재의 노선을 밀어붙였고 독재자란 비난 속에서도 빈곤의 굴레를 결국 벗어 났다. 사람들의 사회가 그때도 오늘도 말 많기와 개인주의, 지역주의는 여전하니 앞으로도 영원할 것인지 해결할 큰 사람이 백마를 타고 올 것인지.


세종시 안착과 신공항 동남권 관련과 과학벨트 신도시 입지건 등에 갈등과 분열현상이 심할 정도로 끓는다. 야구공으로 축구나 농구를 한다면 어울리지 않음은 물론 흥미도 없다. 국책사업을 국책사업의 저울로 달고 큰 그릇으로 받아야 한다.


50년전 박정희의 눈으로 작금의 대한민국 사회상 현주소의 시계를 본다면 어떻게 분석하여 정리할 것인지 나라안 분열과 갈등이 지구를 펼쳐놓고 볼때 지구의 판구조론 이상으로 해석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물론 그 때는 배고픔을 면하기 위한 박정희의 리더쉽과 오늘 배불리 밥 먹고 난 후의 다양한 각계 각층의 배부른 사람들의 사고를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는 리더쉽은 확연히 차이가 있고 말고다.
어떻든 시대적 과제를 계속 아래로 넘기며 두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고 중지가 모아지면 큰 배를 만들어 5대양을 넘나들 대인이 와야 한다면 그러할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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